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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6 05:01 수정 : 2019.12.06 11:26

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글항아리·1만5000원

‘한국 따위 필요 없다’ ‘문재인, 너야말로 오염수’ ‘한국의 반일 성향은 일본을 부러워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 ‘귀찮은 이웃에게 안녕’ ‘한국인 10명 중 1명은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분노조절이 안 된다’

일본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익명의 댓글이 아니다. 일본의 언론이 쓴 기사 제목과 보도 내용이다. 베스트셀러로 서점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는 책 제목들을 살펴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이라는 병> <문재인이라는 재액>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망상대국 한국을 비웃다> <뻔뻔한 한국인> <웃길 정도로 질 나쁜 한국 이야기> <만화 혐한류> 등. 그중 <문재인이라는 재액>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는 무려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책이고, <만화 혐한류>는 100만부가 팔렸으며, 친일 사관의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은 아마존재팬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기쿠지로의 여름> <하나비> 등의 영화로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한국 정치인의 얼굴 사진을 두고 “저 동과(호박 종류) 좀 어떻게 안 되나. 삶아 먹으면 안 되나. 삶아 먹으면 맛있겠다”고 말하고 일본군 ‘위안부’ 동상에 대해선 “가슴이 처졌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우익 시위대는 길거리에서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일본 내 코리아타운 대학살을 실행하자” “한국인 여성은 성폭행해도 된다”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같이 죽여라”라고 외친다.

<혐한의 계보>는 일본이 언론과 문화를 무기로 일상의 심장부에서 재생산해내고 있는 ‘혐한’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최근의 혐한 현상은 과거의 양상과 두드러진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는 매스미디어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전에는 인터넷에서 오락거리 정도로 소비되던 혐한을 공식 매체들이 적극 생산해내고 있다. 공중파 아침 프로그램에서 혐한 방송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신문과 잡지들이 ‘한국 특집’을 너나없이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혐한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혐한만 내세우면 시청률이 급등하고 10만부도 안 팔리던 삼류신문이 전국구 언론으로 부상한다. 그야말로 ‘혐한 비즈니스’다. 둘째는 정부가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에 가장 큰 외부 적은 북한이었는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대화, 남북대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이른바 ‘재팬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개헌을 통한 군사대국화 등 우경화 노선을 걷는 아베에게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감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필수조건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한국 적대화 전략은 아베 정권의 생존 전략이다. 셋째는 혐한의 원인 제공자가 한국이라는 논리 구조의 강화다.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와 배상 요구가 한일 관계의 미래를 짓밟고 일반인들의 혐한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논리다. ‘사죄할수록 한국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구조를 조장할 뿐’이란다.

혐한의 가속화는 일본의 20년 장기 불황, 한중 관계의 밀착으로 인한 일본 민족주의의 심화,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 위협에 대한 두려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선 가상의 적이나 악을 찾아야 한다. 일본의 위대함이나 우월함을 치켜세우는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혐한 시위를 일삼는 우익단체에 대응하는 양심적인 행동주의 시민들도 있다. 이들은 우익단체의 시위 장소에 나가 혐한 반대 서명도 받고 몸으로 시위를 봉쇄하기도 한다. 이들의 활약상은 <카운터스>(2017)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16년엔 혐오 발언을 처벌하는 ‘헤이트 스피치 법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일본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일본의 오래된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다루면서 ‘혐오’라는 감정의 심리적·철학적 성찰까지 담고 있다.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혐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노윤선의 첫 단독 저서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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