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과학사·1만8000원 대표적 좌파 이론지 <문화/과학>이 100호 특집 주제로 ‘인간의 미래’를 선택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인류세’ 또는 ‘자본세’라고 규정하는 데 동의한다면, 인류가 망쳐 놓은 지구의 위기를 수습하고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자본을 극복하는 일과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쓴 ‘문명사적 이행기와 인간의 미래’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심 교수는 지금 세계가 “유례없이 거대한 ‘문명사적 이행기’에 접어들었다”며, 현재의 위기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지구 생태계 전반의 위기’ ‘젠더·세대 갈등과 인공생명·노령화 문제 등이 중첩된 인간생태계의 새로운 균열’ ‘만성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해체 과정(브렉시트, 미·중 신냉전, 한·일 무역전쟁 등)이 이 교차하여 터져 나오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전반의 위기’, 그리고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인공지능혁명’. 그는 이 가운데 특히 인공지능혁명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주목한다. “정보혁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자본축적의 도구로 삼아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문제였듯이, 인공지능혁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예속되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그는 ‘인공지능혁명+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어떻게 ‘인공지능혁명+대안적 생산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지 방향을 모색한다. “2040년 전후로 예고되고 있는 특이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혁명과 개인구성체의 혁명적 변화(‘인간혁명’) 간의 쌍방향 소통을 촉진하여 ‘경제적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더불어 통치양식의 민주화를 위한 ‘지적·문화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형식적 민주주의(내용적으로는 귀족제)를 실질적 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소환 가능한 민주주의)로 전환’해나가야 한다고 심 교수는 강조했다. 이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인간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강력한 역량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해 나간다면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공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심 교수는 이를 역사지리·인지생태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프레임으로 부르면서 “‘조성의 시간’이 모순의 과잉결정 속에서 미끄러지는 ‘재생산의 시간’(지배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의 시간)이라면, ‘사건의 시간’은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이중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변동의 시간’(피지배계급이 능동적으로 전개하는 계급투쟁의 시간)”이라며 “세계체제의 상대적 안정기에는 전자가 지배적이지만 세계체제의 내적 모순이 응축되어 폭발하는 이행기에는 후자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세계는 무기적 환경과 유기적인 생명체, 인공적인 사물들과 사람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덮여 있다. (…) 그러나 정작 사람 자체가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다중지능 네트워크 역량을 지닌 특수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개인에게 내재한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사회적 뇌의 잠재력을 규명하는 새로운 인간학 위에 정치학을 구축함으로써 ‘환경의 변화와 인간활동 변화의 일치’의 조건과 이를 확대해 나갈 혁명적 실천의 경로를 규명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결론 내렸다. 100호를 맞아 그동안 <문화/과학>에 실린 특집 가운데 주목할 만한 글을 모은 <문화론의 도래와 파장>, 문화현실을 분석한 글 중 23꼭지를 엄선한 <한국 문화현실의 지형들>도 별도의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책 |
심광현 교수 “자본세 극복은 가능하다”…‘문화/과학’ 100호 발간 |
문화과학사·1만8000원 대표적 좌파 이론지 <문화/과학>이 100호 특집 주제로 ‘인간의 미래’를 선택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인류세’ 또는 ‘자본세’라고 규정하는 데 동의한다면, 인류가 망쳐 놓은 지구의 위기를 수습하고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자본을 극복하는 일과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쓴 ‘문명사적 이행기와 인간의 미래’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심 교수는 지금 세계가 “유례없이 거대한 ‘문명사적 이행기’에 접어들었다”며, 현재의 위기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지구 생태계 전반의 위기’ ‘젠더·세대 갈등과 인공생명·노령화 문제 등이 중첩된 인간생태계의 새로운 균열’ ‘만성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해체 과정(브렉시트, 미·중 신냉전, 한·일 무역전쟁 등)이 이 교차하여 터져 나오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전반의 위기’, 그리고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인공지능혁명’. 그는 이 가운데 특히 인공지능혁명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주목한다. “정보혁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자본축적의 도구로 삼아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문제였듯이, 인공지능혁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예속되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그는 ‘인공지능혁명+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어떻게 ‘인공지능혁명+대안적 생산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지 방향을 모색한다. “2040년 전후로 예고되고 있는 특이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아래로부터의 과학기술혁명과 개인구성체의 혁명적 변화(‘인간혁명’) 간의 쌍방향 소통을 촉진하여 ‘경제적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더불어 통치양식의 민주화를 위한 ‘지적·문화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형식적 민주주의(내용적으로는 귀족제)를 실질적 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소환 가능한 민주주의)로 전환’해나가야 한다고 심 교수는 강조했다. 이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인간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강력한 역량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해 나간다면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공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심 교수는 이를 역사지리·인지생태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프레임으로 부르면서 “‘조성의 시간’이 모순의 과잉결정 속에서 미끄러지는 ‘재생산의 시간’(지배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의 시간)이라면, ‘사건의 시간’은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이중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변동의 시간’(피지배계급이 능동적으로 전개하는 계급투쟁의 시간)”이라며 “세계체제의 상대적 안정기에는 전자가 지배적이지만 세계체제의 내적 모순이 응축되어 폭발하는 이행기에는 후자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세계는 무기적 환경과 유기적인 생명체, 인공적인 사물들과 사람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덮여 있다. (…) 그러나 정작 사람 자체가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다중지능 네트워크 역량을 지닌 특수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개인에게 내재한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사회적 뇌의 잠재력을 규명하는 새로운 인간학 위에 정치학을 구축함으로써 ‘환경의 변화와 인간활동 변화의 일치’의 조건과 이를 확대해 나갈 혁명적 실천의 경로를 규명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결론 내렸다. 100호를 맞아 그동안 <문화/과학>에 실린 특집 가운데 주목할 만한 글을 모은 <문화론의 도래와 파장>, 문화현실을 분석한 글 중 23꼭지를 엄선한 <한국 문화현실의 지형들>도 별도의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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