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9 06:00
수정 : 2019.11.29 20:05
우리는 코다입니다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지음/교양인·1만8000원
어떤 이들은 ‘우리 부모가 좀 더 배웠더라면’을 소원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부모가 좀 더 부유했다면’을 바란다면 또 어떤 이들은 ‘우리 부모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하고 그려본다. <우리는 코다입니다>는 청각장애인(농인) 부모 아래 자란 자녀들의 성장담이다. ‘코다’란 ‘농부모의 자녀’(children of deaf adults)를 두루 뜻하는 용어인데, 이 책은 농부모의 자녀 중 비장애 자녀(청인)들이 의기투합해 썼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는 동명의 영화와 책을 통해서 코다의 시선으로 농부모 이야기를 풀어냈던 이길보라 감독과, 수어 통역자이자 언어학 연구자로 일하는 이현화,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황지성까지 세 명의 한국 코다와 미국에서 수어 통역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수경 이삭슨 한국계 미국인 코다가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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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인터내셔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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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과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농인 부모들은 막노동과 노점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철저히 비장애 위주인 사회와 소통하는 일은 대개 자녀의 몫이었다. 이들은 막 걷기 시작할 때 손님이 왔다는 걸 부모에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 초등학생 때 이미 은행에 가서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아픈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의사와 소통시키고, 학교 담임과 상담하는 일까지 했다. 농인 부모와 사회를 연결하는 ‘통역자’로서의 삶은 청인 자녀의 숙명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귀머거리 부부의 불쌍한 아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오롯이 견뎌내면서 듣지 못하는 부모에게 전달할 수도 없는 숱한 경멸과 무시의 언어 또한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보호자를 보호하는 피보호자 또는 ‘어른아이’의 경계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농세계에도 청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과도한 책임은 성장기를 거치며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게 만들지만, 그리 멀리 떠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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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코다 국제 컨퍼런스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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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코다들의 힘겨운 성장기를 단순하게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의 삶에서 분투하던 이들은 ‘코다 코리아’라는 모임을 꾸려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세미나도 열고 국내 코다들을 지지하면서 국제 모임인 ‘코다 인터내셔널’까지 날아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나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을 찾았고 그걸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어디엔가 소속되는 느낌, 내 이야기를 그냥 내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곳, 아무도 나를 불쌍히 보지 않는 곳, 나 역시 슬픔과 응어리에 사무쳐 이야기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만난 것이다. 이같은 소속감, 동질감은 수치심과 열등감을 자유감과 해방감으로 승화하는 길목이 되어 주었다. 가정 안에서는 부모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사회 속에서는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동력을 만들어주었고, 끝내 농인의 문화도 청인의 문화도 모두 자신의 문화적 자산으로 향유할 수 있는 자부심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코 농인/청인, 장애/비장애의 틀거리로만 읽히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성별·국적·계급·인종·지역 등 어떤 지점에서는 소수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서로 연대하고 공감하고 지지할 때 상처받은 개인은 소외되고 모순된 ‘감옥’을 박차고 나가게 되고, 그때 상처는 드넓은 세상을 날아다니는 날개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눈부시게 빛나는 성장담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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