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1 06:01
수정 : 2019.11.04 14:12
[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마시멜로(2019)
전문 서평가이자 초짜 소설가인 내게는 딜레마가 있다. 다른 사람의 책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글을 써야 하지만 자기 책에 대해서는 그런 글을 가급적 피해야 작가로서 기운을 잃지 않고 계속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곧 출간될 책의 사전 서평을 읽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버렸다. 자학의 의도가 아니라면 하지 않아야 했다.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질 평은 없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스트레스를 스스로 늘린 것만은 사실이었다. 세상살이가 미세하게 복잡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러기에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에 나오는 로맨스 소설가에게 이입하기는 쉬웠다. 시드니에 사는 쉰두살의 프랜시스는 연애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렸는데도, 다른 피해자를 돕는 오지랖 넓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제 새 책은 계약을 거절당하고, 얼굴 모르는 독자로부터 최악의 리뷰를 받았다.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 최고급 치유 휴가를 제공한다는 평온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나만 해도 여유만 있다면 당장 떠나고 싶다.
프랜시스를 포함, 이곳에 모인 아홉 명의 손님들은 모두 인생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가족의 죽음, 파트너와의 불화, 커리어의 벽, 자기혐오, 허무감. 평온의 집을 운영하는 마샤는 러시아 출신의 전직 사업가로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은 경험이 있고 이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꿀 프로그램을 고안했다고 한다.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심리 치료를 섞은 수상한 프로그램이지만, 적어도 식이와 체중 조절이라도 되겠지, 하며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위험에 처하고 인생의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쪽에서 일어난다.
인기 드라마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의 원작자이기도 한 리안 모리아티의 소설이 다른 가정 스릴러와 확실히 구분되는 점은 공동체 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개인의 가정에 숨겨진 문제는 공동체 안에서 협조와 이해, 가끔은 공모자와 같은 묵인을 통해 해결된다.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작은 마을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만나는 고급 리조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손님들은 여기서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며 본의 아니게 서로의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 개인들의 문제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접점을 이룰 때 해결된다는 작가의 기본 이상은 이 작품에서는 블랙 코미디적 색채를 띠면서 으스스하고도 동시에 낭만적으로 펼쳐진다.
몸과 마음을 바꾸는 치유 휴가, 우리를 혹독히 몰아세우는 현대 사회가 가장 쉽게 마케팅할 수 있는 꿈의 상품이다. 평온의 집의 진짜 정체를 안다고 해도 모두가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실에서는 평온의 집에 갈 기회가 없으니 따뜻한 스릴러 소설로 마음챙김을 대신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덧붙이자면, 나는 악평을 쓴 서평가의 결말에서 작은 교훈을 얻었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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