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8.08 20:36 수정 : 2018.08.08 21:10

김홍민의 탐정놀이

볕이 좋은 날이었다. 나는 세탁을 마친 빨래를 베란다에 널고 한가롭게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별안간 척추 부근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가 등짝을 가격한 것이다. 엄마였다. “이 새끼야, 빨래를 탁탁 털어서 주름이 지지 않게 널어야지, 저게 뭐냐, 저게.” 아아 도대체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실수로 폭탄을 잘못 던져 아군을 몰살시킨 척탄병이 된 기분이었다…는 건 농담이고 고작해야 빨래 가지고 뭘 이렇게 사람을 잡나 싶어서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스무 살이 넘도록 빨래를 해도 제대로 널 줄 모르고 장차 너는 뭐가 될 거냐며 엄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때 결심했다.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질풍노도의 시기도 지났건만 돌이켜 보면 나도 참 철이 없었구나 싶다.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무렵, 나는 서울 미아리에 반지하 전세를 얻어서 자취를 시작했다. 햇빛은 일 년 열두 달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화조 옆이라 퀴퀴한 냄새가 나고 약간 과장해서 발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심심찮게 출몰하고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빨래를 대충 널어도 괜찮았다. 설거지를 쌓아놔도 상관없었다. 야한 비디오도 실컷 빌려 봤다. 백성들이 이렇다 할 스트레스 없이 잘 먹고 잘살아서 심지어 군주의 존재까지 잊은 채로 격양가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던데 실로 그에 비할 만했다. 당시에는 학원에서 중고생들을 가르치며 꽤 벌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손 벌릴 일도 없었다. 나는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제멋대로 살았다.

엄마의 결혼 잔소리 때문
자취 시작···여동생도 압박받아

몇 년 동안 이어지던 태평성대에 균열이 생긴 건 동생이 결혼하고 난 이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생 부부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라고 해야겠다. 그전까지 엄마의 잔소리를 견뎌야 하는 날은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 정도였다. 한데 동생이 아들을 낳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툭하면 가족들이 소집되기 시작한 거다. 이 ‘툭하면 소집’은 조카가 커갈수록 잦아지더니 급기야 동생 부부가 딸을 낳자 동네방네 들어선 통닭집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말았다. 짐작건대 여기에는 귀여운 손자 손녀를 상시로 보고 싶다는 엄마의 소박한 욕망과, 주변머리 없는 큰아들에게 아들딸 낳고 잘 사는 동생 부부의 알콩달콩 한 모습을 자주 보여줌으로써 결혼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겠다는 엄마의 커다란 욕망이 결부돼 있는 듯했다. 잔소리의 횟수와 강도는 점차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다행스러웠던 점은 결혼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둘째 동생과 한 살 터울인 막내 여동생도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은 영혼이 탈탈 털렸다. 의정부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여동생 홍희는 교사 발령을 받은 그 날 비혼을 선언했건만 엄마는 아직도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여동생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은 가족 모임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를테면 나는 ‘방학 때 선생님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말라고 청원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뉴스를 거론하며 기막혀했고 홍희는 ‘요즘 서점에 가면 독자들을 위로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책들만 보이는 것 같다’고 논평하며 한심해 했다.

주고받는 이야기의 내용은 두서가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꼭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었다. ‘혼자 사는 여자의 괴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과잉반응일 수도 있지만”이라며 동생은 자꾸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아파트의 우편함에 누군가 편지를 넣어두거나 문 앞에 꽃다발을 갖다 둔다는 거다.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날에는 웬 남자가 자신의 뒤를 쫓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누가 널 짝사랑하거나 학생들이 장난친 걸 거라고. 급기야 호신용 호루라기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정도로 되겠냐, 다음에 만나면 내가 가스총이라도 사줄게”라며 눈치 없는 중학생이나 할 법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때 왜 좀 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2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는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정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건 지난주 목요일 새벽이었다. 그 시간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지금 홍희가 병원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했다. 차가 막힐 시간이 아니기도 했지만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려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홍희씨 가족 됩니까?” 한눈에 보기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경관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네, 제가 오빤데요.” 나는 살짝 긴장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동생분이 조금 다치셨어요. 의정부 백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인데 저희 동료가 금방 모시고 올 겁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내가 불안한 기색으로 앉아 있는 동안 경관은 “사건 파악 차원에서”라는 단서를 달아 동생의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을 들려주었다. 피해자의 사정 청취라고 하나,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급한 연락
여동생 병원 신세

일 년쯤 전부터 이상한 일이 자꾸 생겨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편지함에 내용 없는 편지가 꽂혀 있기도 하고 현관 앞에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꽃이 놓여 있기도 했어요. 늦게 퇴근해서 집에 올 때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모든 문을 꼭꼭 닫아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창문만 닫아두었는데 나중에는 방문도 반드시 닫아놓게 됐어요. 창문이든 방문이든 열어두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젯밤, 아니, 새벽이네요. 너무 더워서 잠을 좀 설쳤습니다. 몽롱한 채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문득 현관의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옆집인 줄 알았어요. 혼자 사는 아저씨가 있는데 매일 늦게 퇴근하셔서. 몇 신데 지금 들어오나 하고 시계를 봤더니 새벽 3시가 막 지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이번에는 도저히 옆집에서 들린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쓱~쓱~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이런 소리였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겁이 난다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저는 안방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거실은 어두웠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착각인가 하고 그대로 닫으려는데 평소와는 다른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서재로 사용하는 건넌방의 문이요. 분명히 닫혀 있어야 할 건넌방 문이 열려 있었어요.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왜냐면 건넌방은 복도로 통하는 커다란 창문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방보다 더 강박적으로 닫혀 있는가를 확인하곤 했으니까요. 이상하다 싶은 순간 건넌방의 열린 문틈 사이로 희끄무레한 뭔가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어요.

더 정확히 얘기하면 누군가가 신고 있는 게 분명한 운동화였습니다. ‘문 뒤에 누가 있다’라고 생각한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릎이 덜덜 떨렸습니다. 제 입에서 쌕쌕 헐떡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할 지경이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는, 제 몸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만 문을 열고 가만히 안방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오직 ‘집 밖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어요. 현관까지의 거리가 아득해 보였습니다. 그때 건넌방 쪽에서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쪽의 기색을 살핀다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더욱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한 발 한 발 교대로 움직이던 다리가 겨우 신발장 근처에 다다랐다 싶을 때쯤에는 온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다행히 건넌방 문 뒤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손을 뻗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현관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 방법은, 없지 않나요.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은 계속 후들거렸습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마침내, 덜컹.

현관문 열리는 소리는 참으로 크게 들렸습니다. 몸속의 피가 몽땅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후다닥’ 하고 뛰어오는 소리가. 그게 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저는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습니다. 누군가가 제 머리채를 와락 잡아챌 것 같다는 두려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집은 2층이었고 수위실에는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친년 같은 모습으로 난입한 저를 보고 야간 근무자가 입을 딱 벌리더군요. 중간에 넘어져서 무릎은 피투성이였습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요. 자초지종을 대충 파악한 야간 근무자가 경찰에 신고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몰카 설치 몰래 침입 한 남자
잡고 보니 동네 청년

여기까지가 녹음된 내용이었다. 두려움을 느낀 지난해부터 집 안의 문을 닫아놓는 데 집착했던 동생은 그러한 강박 덕분에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뛰쳐나와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며칠 뒤에 붙잡힌 범인은 평소에 동생과 인사하며 지내던 동네 주민으로 밝혀졌다. 아파트 복도 천장에 붙어 있는 화재 감지기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동생의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폭력 예측 및 관리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개빈 드 베커는 <서늘한 신호>에 이렇게 적었다. ‘주변 남자에게 ‘다른 사람이 당신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한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습니까’라고 물어보라. 남자들 대부분이 몇 년씩 과거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여자에게 하면 대부분이 최근의 일을 이야기하거나 어젯밤, 오늘 혹은 매일이라고까지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자들은 안전을 걱정하는 여자들을 조롱하거나 핀잔을 준다. 남자와 여자가 안전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간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 간에 극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런 간결한 서술을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말이다. 남자들은 속으로 여자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는 반면 여자들은 속으로 남자들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

공중화장실에 뚫려 있는 구멍을 지금껏 의식해 본 적이 없고, 스토커(는 화성에서 오지 않았다. 우리 여형제가 데이트한 남자고, 우리 회사가 고용한 남자며, 우리 친구가 결혼한 남자다)란 독특한 유형의 범죄자로 딱 보면 알 수 있다고 여겼으며, 몰래카메라로 인한 불안 같은 건 전혀 몰라, 결국 눈치 없는 중학생이 할 법한 농담이나 건네며 폭력의 징후를 가볍게 여겼던 나는 앞으로 동생에게 평생 미안함을 느끼며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사죄의 마음과, 우연히라도 이 글을 마주할 형제님들에게 조금이나마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기분으로 적어보았다.

글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일러스트 이민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김홍민의 탐정놀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