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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4 10:11 수정 : 2018.06.14 10:24

[ESC] 김홍민의 탐정놀이

‘각 출판사에서 펴낸 도서의 판매 추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서점이 가진 특유의 자질 가운데 하나다. 편집과 마케팅 업무를 겸하고 있는 나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발표하니까 ‘요즘은 종합적으로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상위에 랭크된 도서를 제외하면 서점 직원이나 해당 출판사의 담당자가 아닌 이상 외부인은 전혀 모른다. 반면 인터넷서점에서는 자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모든 책의 판매 지수를 공개하기 때문에 보다 상세하게 판매 데이터를 유추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자. 이 글을 쓰는 지금 인터넷서점 A사에 등록된 <삼귀>의 ‘세일즈 포인트’(인터넷서점이 자사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계산한 판매 동향 수치. B사는 ‘판매지수’라 함)는 3만5320이다. <삼귀>를 출간하고 오늘까지, 그러니까 대략 2주 동안 A사에서만 1462권이 팔렸다. 비슷한 시기에 ‘사월의책’에서 펴낸 <숲은 생각한다>의 세일즈 포인트는 8920이다. 단순 비교하면 4배쯤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아, 그럼 <숲은 생각한다>는 A사에서 대략 350~400권쯤 팔렸겠구나’ 하고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A사가 팔고 있는 모든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누구나 볼 수 있으며 매일 아침 업데이트된다. 등락을 거듭하는 모양새가 주식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두 군데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관심이 가는 책들의 세일즈 포인트를 훑어본다. 상승 폭이 큰 도서가 있으면 상관관계를 헤아리기도 한다. 어제는 100이었는데 오늘 10만으로 뛰었다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런 계기 없이 갑자기 오르는 법은 없다. 왜 판매가 요동쳤을까. 출판사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했나. 매체에 관련 기사가 실렸나.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나. 두루두루 살피다가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구나’ 싶어 감탄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바꿔서 마케팅을 해봐야지’ 하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다수의 독자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인터넷서점의 특징이라 하겠다(자사의 책에 관한 정보가 해당 출판사가 아니라 서점에 집적되는 걸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지만). 예전에는 책 뒤쪽에 독자 엽서라는 게 있었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왜 구입했는지, 읽고 난 소감은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에 독자가 답을 적어서 출판사로 보내면 ‘소정의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책을 만든 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정보가 되겠지만 회수율은 1%가 약간 넘는 정도였다고 들었다. 우체국을 이용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이었을 텐데 인터넷서점의 리뷰란은 중간 과정이 대폭 줄어드니까 보다 많은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신간의 경우에는 출간 초반의 독자 리뷰가 판매에 영향을 미치므로 주의 깊게 살핀다. 출간된 도서의 세일즈 포인트와 함께 독자 반응을 확인하는 일은 내 중요한 일과인데 간혹 ‘배송이 늦고 책 띠지가 구겨져서 왔기 때문에 별점 하나’라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받아 보니 더럽게 두꺼워서 별 하나’ 같은 코멘트를 보곤 한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배송이 늦었다거나 책이 구겨져서 왔다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매기면, 이후로 책을 구매하려는 독자들은 ‘평점이 낮으니까 내용이 별로인 모양’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물론 배송이 늦거나 띠지가 구겨진 책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걸 책 내용에 대한 평가로 일반화할 수 있는 점수에 반영해 버리면 책을 만든 편집자는 상당히 억울하다. 게다가 ‘더럽게 두꺼워서 별 하나’라니 좀 너무하지 않은가.

저자의 경우는 어떨까. 몇 년 전쯤에 나는 책을 한 권 쓴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좋은 책은 독자들이 알아서 읽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읽는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이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사면, 이 출판사만의 독특한 향취가 있어서 좋다는 기분을 느끼고, 놀이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해주고 싶었다’라고 서문에 적었는데 말 그대로 재미있게 만들고 재미있게 팔자는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서점 B사의 독자 리뷰란에 이런 코멘트가 올라왔다.

‘김홍민, 일본 추리소설 따위나 번역해서 파는 자가 출판이 어쩌고저쩌고 설치는 모습이 실로 가관인, 꼴의 저자랍시고 사진도 박았다.’

나는 그 문장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일본 추리소설 따위……. 출판이 어쩌고저쩌고 설치는 모습이 실로 가관……. 꼴의 저자랍시고……. 순간 오싹하니 무서워졌다. 어디선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꼴좋게 되었다, 꼴좋게 되었다며 비웃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일본 추리소설을 번역해서 내는 게 대관절 왜 못마땅한 걸까. 노르웨이 추리소설을 만들었으면 달랐을까. 프랑스 추리소설을 낼 걸 그랬나. 아니, 추리소설 말고 창업하기 전에 다니던 출판사처럼 사회과학 책을 선보였다면 이런 비아냥거림을 안 들었을까. 그날 밤, 담배를 한 갑쯤 태웠나 보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내내 같은 말이 맴돌았다. 일본 추리소설 따위. 출판이 어쩌고저쩌고 설치는 모습이 실로 가관. 꼴의 저자랍시고. 꼴의 저자랍시고. 꼴의 저자랍시고.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일본 추리소설을 번역해서 파는 게 왜 못마땅하신 건가요. 일본 추리소설을 만드는 사람이 출판에 관해 의견을 내면 곤란한 걸까요. 그냥 제가 싫으신 건가요. 속상한 마음에 학원을 운영하는 동창을 만나 폭음하며 얘기했다가 “새끼야, 너 그러니까 돈도 안 되는 출판 같은 거 때려치우고 우리 학원 와서 논술 가르치라니까, 내가 돈 많이 줄게”라는 말만 들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드라마가 있다. 경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쩐 일인지 신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척 보기에도 촌스러워 보이는 신랑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싹싹 빌지만 신부의 노여움은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왜 그토록 화가 난 걸까. 사연인즉, 조금 전에 끝난 결혼식에서 “신랑은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신부를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주례의 질문에 신랑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은 일순 웃음바다가 됐으니 신부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신부는 남자의 행동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거면 왜 결혼했나. 왜. 왜. 왜.

이후로 몇 년간 그 독자 리뷰를 잊고 살았다. 책 제목도 잊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날따라 포털의 검색 창에 내 책 제목을 넣어 검색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신건강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찾아보는 건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며 몸에 밴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어떤 사람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아이디가 ‘알랭 드 보통미남’이었는데 그가 최근에 포스팅한 내용이 검색에 걸린 것이다. ‘피도 살도 안 되는 책’이라는 제목에 ‘알랭 드 보통미남’이 엄선한 듯한 50권이 정리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당히 3위를 차지한 내 책 밑에 ‘일본 추리소설 따위나 번역해서 파는 자가 출판이 어쩌고저쩌고 설치는 모습이 실로 가관인, 같잖은 내용만 가득한 책’이라는, 낯익은 코멘트가 보였다.

순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비참한 기분으로 잠 못 이루던 언젠가의 기억이 아스라이 되살아났다. 나는 뭘 어쩌겠다는 마음도 없이 ‘알랭 드 보통미남’의 블로그 포스팅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맛집을 찾아 헤맨 여정, 아내와의 행복한 한때, 직장 생활의 어려움 같은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사진과 함께 적혀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거나 약간 위인 듯했다. 야구 관련 글이 많았는데 주말마다 사회인 야구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모양이었다. 중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펑고’(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트로 쳐 준 타구)를 하고 남양주 어디쯤 있는 사설 운동장에 모여서 연습 경기를 치른 스코어 결과도 있었다.

문득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한강 난지야구장에서 다른 사회인 야구단과 시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난지야구장은 교통이 편하고 주차장도 넓어서 예약하기가 힘들기로 유명하다. 그 어려운 곳을 예약한다니 대단하다는 칭찬의 댓글이었는데 아마도 같은 팀의 동료인 듯했다. 시합 시간은 토요일 오전 8시였다. 나는 ‘알랭 드 보통미남’을 한번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난지야구장이라면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이니 산책 삼아 갔다가 기회가 되면 말이나 슬쩍 걸어볼까. 그냥 그뿐이었다. 정말로. 그게 괜한 짓이었다고 후회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남의 내용이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이기호 작가의 소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읽어주시길.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했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소설의 말미에 이기호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라고.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도 썼다. 그런가? 불가능한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기호 작가가 서글픔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 출판사 문학동네 편집자 이성근씨가 이 책을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 조금 아까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의 읽기를 마쳤을 때,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그냥 그런 것들이 다 고맙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글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일러스트 이민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일부 내용은 저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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