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어머니 소개 그녀 만나기로 대번에 납득이 가는 “에라 이놈아”였다. 하마터면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말할 뻔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에서 최민식씨가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시다가 극 중 모친인 윤여정씨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최민식씨가 낮게 흐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있잖아(한숨), 처음부터(울음),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 살짝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내가 물었다. “부적이라도 몸에 붙이고 다니래?” “직업이 안정적인 여자를 만나야 네가 살 수 있대.” 요컨대 전망이 깜깜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출판)을 하면서 살려면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한단다.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용하다는 점쟁이가 내놓은 해법이었다. 이래서야 “동쪽에 있는 대학에 20점 낮춰서 지원하면 무조건 합격이야”와 뭐가 다른가.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어질 얘기가 충분히 짐작됐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심야 에프엠(FM) 방송의 디제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괜찮은 처자가 있다”고. 몇 달 전부터 엄마는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아침마다 만나는 또래 아줌마들과 친해졌는데 그중 한 분의 따님이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어리둥절할 차례였다. 그렇게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왜, 뭐가 아쉬워서 날 만나겠느냐고 물었다. “알긴 아네. 그렇게 좋은 직장에 다니는 아가씨가 당연히 너 따위를 만날 리 없지. 근데,” 어쩌다 보니 저쪽에서 내가 몇몇 신문에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읽은 후로 관심을 보이더란다. ‘어쩌다 보니’는 무슨. 엄마가 먼저 슬쩍 흘렸겠지. “인터넷에서 우리 아들이 하는 출판사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를 볼 수 있어”라는 식으로. 인과를 무시하고 목적을 위해 시작부터 상대의 기를 확 꺾는 심모원려와, 기승전 구조가 확실한 이야기 사이에 듣는 이로 하여금 당신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은근히 주지시키는 용의주도함에 있어서 엄마는 이제 베테랑의 반열에 오른 듯하다.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식으로 막후에서 반장 선거 같은 걸 좌지우지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된 이상 거절하기 어렵겠다 싶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문자로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다. 시청에 다닌다는 자매님의 사진이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듯 밝게 웃고 있다. 아아, 그런데. 자매님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누구랑 닮은 건가. 아닌데. 분명히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맙소사. 만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상대도 내 이름을 신문에서 읽고 만나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것은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기억은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잊어버리고자 했던, 마음속에서 이미 한 번 털어냈던 기억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붕괴하고 도쿄에서는 지하철 테러가 발생했으며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총리가 암살되는 바람에 세상이 떠들썩했던 그해에 우리는 만났다. 피시(PC)통신으로. 그러고 보니 ‘피시통신’ 용어를 쓰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요즘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용어일 수도 있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개인용 컴퓨터(PC)를 다른 컴퓨터와 전화회선으로 연결하여 자료를 주고받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사진 보니 낯이 익어
알고 보니 예전 그녀 그 무렵 나는 밤이면 밤마다 피시통신이라는 신세계에서 ‘예술의잔당’이라는 필명으로 살았다. 전화 요금 때문에 엄마한테 혼나기도 엄청 혼났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서비스는 하이텔 채팅이었다. 은희경씨의 소설 제목인 ‘타인에게 말 걸기’라는 이름의 방을 만들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유치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거 나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다들 그러고 놀았다. 방 밑에는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어 놓는다. 예컨대 ‘서울/20세/남’ 같은 식으로. 이후로는 근성을 가지고 이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유저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에는 오로지 ‘이성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대화가 잘 진행되면 직접 마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번개’라 한다. 피시통신 초창기에는 번개 문화도 건전한 편이었다. “번개로 만나서 결혼했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 왜 한석규, 전도연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접속>도 있었고. 자매님을 처음 만난 건 누군가 개설한 ‘영퀴방’에서였다. ‘영퀴방’은 영화퀴즈방의 줄임말이다. 무작위로 접속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스무고개 하듯 퀴즈를 내면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 답을 적고, 정답을 맞힌 멤버가 계속해서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이어간다. 거기에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면 참신한 문제를 만들 수 있을까 밑줄까지 쳐가며 그해 창간된 <키노>와 <씨네21>을 열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접속해서 만나는 만큼 매너를 지키지 않거나 이성을 유혹하는 데 더 집중하는 멤버가 끼면 분위기가 나빠져서 오래 지속하긴 힘들다. 그날이 그랬다. 밤새 재밌게 놀았는데 새로 들어온 한 명이 분탕질을 쳐서 사람들이 뿔뿔이 방을 나갔고 동이 틀 때쯤에는 두 명이 남았다. 다른 방들 역시 파장 분위기라 옮기기도 애매했다. “둘이 퀴즈를 내는 건 이상하니까 한 사람이 나갈 때까지 수다나 좀 떨까요.” 상대의 제안에 내가 맞장구를 치며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공교롭게도 동갑에 같은 대학을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몹시 희귀하고도 반가운 우연이었다. 게다가 두 시간 후에 등교해야 한다는 처지도 같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따 커피나 한잔하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동안에도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서로 이야기가 통한다 싶으면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어느 봄날 오후, 공대 앞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는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셨다. 질끈 동여맨 머리에 이마가 반듯하고 웃으면 없어질 듯 작아지는 눈이 인상적인 자매님이었다. 이런저런 영화에 대해 우리는 실컷 떠들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취향이 비슷했다. 오후 수업 때문에 헤어지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커피나 한잔”이 “밥이나 한 끼”로, 다시 “영화나 한 편”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성사, 피카디리, 아세아, 국도극장, 호암아트홀, 스카라, 시네코아.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극장을 순례했다. 대부분 지금은 사라진 그리운 이름들이다. 영화관에서 보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 앞 비디오방에서 장국영 주연의 영화 <아비정전>을 본 그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점심에 소주를 나눠 마신 탓인지 몸이 노곤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짧지만, 매일 밤 컴퓨터 앞에서 보내며 누적된 피로가 사라질 만큼 깊이 푹 잤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깨어났을 때 화면에서는 아비(장국영)가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비디오방을 나오니 하늘이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매일 만났다. 대학 시절 피시통신에서 만나
연인 됐지만 참혹한 기억 있어 연애와 새로운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하는 바람에 피시통신은 얼마간 아예 접속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묘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요즘 각종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여성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이야기 같다는 거다. 나는 곧장 학교 전산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게시판에 들어가 봤다.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한 그 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예술의잔당이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남자를 찾습니다. 스무 살 전후로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그는 제 육체를 가지고 놀다 별안간 연락을 끊었습니다. 저는 지금 임신 3개월이에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매일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이 남자를 아시는 분은 메일로 연락 주세요.” 누가 이런 질 나쁜 농담을, 하고 기겁하는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 명의 자매님 이름이 떠올랐다. 물론 난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장차 일파만파 커지면서 결국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경찰서까지 출입할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그 사연을 쓰기 시작하면 ESC 전체 지면을 할애해도 모자랄 듯하다. 뒷얘기가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소설 <리카>를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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