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자 만나러 강원도 출장 다만 마지막으로 받은 전화는 좀 달랐다. 남자는 자신을 화전동에 사는 김 노인이라고 소개했다. 화전동이라면 강원도 태백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목소리로 미루어 나이는 대략 예순 살 전후인 듯싶었다. “동네 농사일을 도와주며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고 있지요. 시간이 남아돌아서 종이 인형을 만드는 게 취미가 되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재미 삼아 만들다가 동네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을 보여주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 극단에서 했던 배우 생활이 그제야 빛을 보는 듯했다며 그는 웃었다. 소문은 금방 퍼졌다. 어른들까지 찾아와 인형극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남자는 인형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한데 작년 여름 무렵부터 이상한 게 보여서. 믿지 않으셔도 할 수 없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던 차에”라고 운을 떼며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달이 밝은 날이 많았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동네 아이들은 그림자밟기를 하며 놀았다. 그림자밟기란 술래가 쫓아다니면서 그림자를 밟고, 밟히면 술래가 되어 다시 밟는 놀이다. 아이들을 상대로 인형극을 마친 날이면 김 노인도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늦게까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전에는 자신을 무서워하며 슬금슬금 피하던 아이들이 “할아버지, 저희랑 같이 그림자밟기 해요”라고 권하러 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흐뭇한 기분도 들었다. 서울로 올라간 자식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서 귀여운 손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던 차이기도 했다. 이 많은 아이들이 몽땅 자신의 손주가 된 것 같았다. 시골이니까 동네 아이들이라고 해봐야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대부분 서울로 떠나서 이곳 분교도 없애네 마네 하며 한참 시끄러웠다. 지금은 어쨌거나 선생님 한 분이 도맡아서 겨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림자밟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 노인의 눈에 이상한 뭔가가 보인 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모처럼 새로 준비한 인형극을 보여준 날 밤이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줄까 하고 머릿수를 세다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들은 일곱인데 그림자가 여덟이었던 거다. 달빛이 밝다 해도 밤이고 일찌감치 찾아온 노안 때문이라고, 착각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으니 잘못 헤아린 것이리라. 그래서 숨이 턱까지 찬 아이들이 잠시 쉬는 참에 다시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림자는? 여덟이다. 그릴 리가 있나. 한 번 더. ………일곱, 여덟. 틀림없다. 김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재작년 겨울에 고장 난 다리를 절룩거리며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문제의 그림자는 그의 발에 밟히기 직전, 스르륵 도망갔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인형극 보여주는 노인
어느 날 몸 없는 그림자 발견 “하필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의 담벼락 그림자 아래로 물처럼 흘러들어가더군요.” 김 노인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 뒤로 또 그림자가 나타났나요?” “네. 제가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준 날 밤에는 어김없이 나타났지요. 다른 아이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알아차린 사람은 저뿐이었지요. 크기로만 보면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 같았습니다.” “요즘에도 나타납니까?” “아니. 겨울밤에는 아이들도 집에서 노니까요. 다만 그 그림자를 본 이후에 가끔 헛것이 보이더군요.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어디 물어볼 데도 없어서 답답했는데 오늘 농협에 갔다가 우연히 들춰본 잡지에 마침 전화번호가 있길래 혹시나 하고 걸어본 겁니다.” 내가 반신반의하는 듯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방금 통화 중에도 헛것이 보였는데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내가 물었다. “뭔가요, 그게. 뭐가 보이셨나요?” 머뭇거리며 다소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빨간 옷을 입은 계집아이가 기자님을 쳐다보고 있네요.” “빨간 옷을 입은 아이요?” 수화기 너머로 손사래를 치는 듯한 김 노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별것 아닐지도 모릅니다. 바쁘실 텐데 공연히 시간을 뺏었군요. 실례 많았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다. 나는 잠시 수화기를 든 채로 김 노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확실히 지금껏 걸려온 전화에 비하면 진정성이 느껴지긴 했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나를 찾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있다면,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고민을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털어놓고 싶다는 정도일까. 그렇지만 대뜸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이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니 확인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그런 의문 섞인 생각을 하며 편집팀 회의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연말 독자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팀장이 “마케팅팀에서 검토해 달라고 준 샘플인데 어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시계의 다이얼(페이스) 중앙에 빨간색 산타 복장으로 정면을 향해 방긋 웃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나는 회사에 출장 보고서를 제출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화전동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인형극 할아버지’로, 김 노인은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다. 덕분에 주소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김 노인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벨을 눌렀다. 내가 신분을 밝히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었다는 점에 감격해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나와의 통화에서 김 노인은,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의 담벼락 아래로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얘기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림자가 매번 그곳에서 사라지는 데에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귀신을 보고 싶다기보다는 귀신이 사라진다는 장소에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언제부터 그 집에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외지인에게 해봐야 좋을 일 없는 동네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줄 만한 사람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근처 구멍가게와 부동산에 들러서 기자 명함을 내밀어 봤지만 헛수고였다. 다들 너무 오래전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을 이장에게는 왜 공연한 짓을 하려는 거냐고 싫은 소리도 들었다. 괜한 걸음을 한 건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혼자서 맥주를 들이켜고 있자니 후회가 밀려왔다. 내일은 김 노인에게 들렀다가 ‘그의 눈에 보인다는 헛것’에 관해 취재하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오래된 봉인 이야기는 이쪽이 아무리 뚜껑을 덮어 놓으려고 해도 뚜껑 쪽에서 열리고 싶어 하는 법이다. 뚜껑은 뚜껑의 처지에서 오랫동안 입을 다물어 오느라 지쳤을 게다. 20여년 전 불탄 폐가에 깃든
버림받은 모녀의 슬픈 이야기 여관 옆 해장국집에서 늦은 아침을 한술 뜨려는데 어제 명함을 놓고 왔던 복덕방에서 전화가 왔다. 전직 소방대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며 지금 복덕방으로 와보라는 거다. 반가운 마음에 해장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곧장 달려갔다. 김 노인보다 열 살쯤 더 많아 보이는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소방대장도 그동안 품어 왔던 이야기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 집은, 그러니까, 이십 년은 비어 있었을 겁니다. 불길한 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짐작했던 대로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불길하다는 소문이 난 겁니까?” 화재가 나서 엄마와 아이가 타죽었다고 그는 말했다. “원래는 최 부잣집이라고, 그 집에서 사들인 일종의 별채였지요.” 당시 최 부잣집 아들 부부에게는 다섯 살 된 딸이 하나 있었다. 엄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었지만 대를 잇지 못하는 손녀를 시어머니는 곱게 보지 않았다. 급기야 아들이 바람을 피워서 사내아이를 낳자, 아들의 부모는 그 사내아이를 호적에 올리도록 종용했다. 그 과정에서 어미와 딸은 별채로 쫓겨나고 말았다. 가엾게도 짐짝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원통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쫓겨난 어미는 분을 참지 못하고 허구한 날 술을 마셨다. 더 나빴던 점은 그때까지 애지중지하던 딸을 호되게 야단치고 때리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집 밖으로도 일절 내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어미를 말리지 않았다. 다들 켕기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불똥이 자신에게로 튈까 두렵기도 했으리라. 때문에 딸은 별채에 갇힌 채 늘 혼자 놀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혼자. 공을 가지고 노는 것도 혼자. 소꿉놀이도 혼자. 누가 훔쳐 듣는 것도 아닌데 이 대목에서 소방대장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난 게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그 별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아아, 입이 근질거리지만 나에게 주어진 지면은 여기까지다.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그림자밟기>를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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