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김홍민의 탐정 놀이
내가 태어난 곳은 이문동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지금의 신이문역 근처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주류 유통회사에 다녔다. 두 가지가 기억난다. 회사 이름은 몰랐지만 직책이 상무였다는 것. 출근이 늦고 퇴근도 늦었다는 것.
매일 자정을 훌쩍 넘겨 집으로 돌아올 때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기 일쑤였다. 엄마는 집에서 살림을 했고 외출이라고 해봐야 와이엠시에이(YMCA) 아기스포츠단에 나를 데려가고 데리고 오는 정도였다. 혜숙이 누나도 우리 집에서 살았다. 식모라고 해야 할지 입주 가정부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내가 앙금앙금 기어 다닐 때부터 함께 생활했다.
집은 제법 큰 단독주택이었다. 앞뜰에는 정원이 있고 사시사철 꽃이 피었다. 뒤뜰에는 연탄을 쌓아놓는 창고와 장독대, 창고는 아니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빈방이 하나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느라 장독 뒤에 숨었다가 와장창 깨먹었던 일이 떠오른다. 화장실은 하필 앞뜰과 뒤뜰 사이에 지었다는 게 특이하다. 그래서 밤에 오줌이 마려울 때마다 곤란했다. 거기까지 가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곤히 자고 있는 혜숙이 누나를 깨워야 했다. 상당히 귀찮았을 텐데 착한 혜숙이 누나는 눈썹 한번 찡그리지 않고 같이 가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종일 밖에 나가서 노는 게 일이었다. 아스팔트는 찾아볼 수 없었고 흙바닥이 거의 모든 골목을 석권하던 때였다. 구슬치기, 다방구, 짬뽕, 오징어, 놀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에 못지않게 멤버도 많았다. 형제 여럿을 둔 집이 대부분이어서 다 모으면 어린이 축구팀을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우리가 노는 동안 엄마들은 동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거나 수다를 떨었다. 앞집에서 어제 부부싸움을 했다더라, 뒷집 장남이 오늘 휴가를 나왔다더라, 이번 주말에 누구네 집에서 생일파티를 한다더라. 서로 모르는 일이 없었다. 그랬던 시절이다.
사건이 일어난 건 내가 일곱 살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아무도 쓰지 않던 우리 집 빈방으로 아저씨 한 명이 이사 왔다. 뒤뜰 장독대 옆에 있는 이 방은 일종의 별채라고 할 수 있겠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공간이었다.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 친구의 사촌형이었다. 하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집도 절도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잠시만 지내게 해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자식은 없고 아내와 사별했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다. 새로 얻은 직업은 외판원. ‘방판’이라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전집류의 책을 팔았다. 소년소녀 명작동화나 대백과사전, 영어로 된 시리즈가 아버지 서가에 잔뜩 쌓인 것도 아저씨가 이사 온 후 아니었나 싶다.
아저씨는 딱 보기에도 붙임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이 되면 매일 같은 시간에 들어와 밥을 지어 먹고 바깥출입은 일절 하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과도 얼굴을 마주치면 눈인사나 하는 것이 다였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사업체를 운영하는 동안 몇 번인가 가까운 이들에게 사기를 당했고 부도가 난 이후로는 남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늘 쓸쓸한 표정이었고 누가 찾아오는 일도 일절 없었다. 그런 아저씨의 방에 이상한 게 있었다. 그 얘기를 맨 처음 꺼낸 사람은 혜숙이 누나였다.
여름이 되돌아왔나 싶을 만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뻘뻘 흐르는 날이었다. 그래서 혜숙이 누나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았을 때는 더위 탓이려니 여겼다. 그런데 가만 보니 누나가 덜덜 떨고 있는 거였다. “너, 왜 그래?” 하고 엄마가 물었다. “방금 뒷방에 갔다 왔는데요.” 누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누나네 고향 집에 있는 동생에게 동화전집이라도 한질 부쳐줄까 싶어서 아저씨가 늘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뒷방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아저씨, 퇴근하셨니?”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안 오신 모양이에요. 근데 문이 열려 있어서.”
지금과 달리 대부분 문단속 따윈 하지 않았고, 잠잘 때 혹시 몰라서 대문이나 잠가두는 정도였다. 더구나 사업 실패로 동생의 친구 집에 얹혀사는 아저씨가 귀중품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더더욱 그랬으리라. “안에 들어가서 청소나 해드릴까 했죠. 그랬는데….” “그랬는데?” 누나는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는 보초병 같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방에 있는 옷걸이에 여자 원피스가 걸려 있더라고요. 다른 옷은 없고 원피스만요.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하얗고 빛이 나는 거예요. 아유, 예쁘다고 생각하며 쳐다봤거든요. 그러다가 남자 혼자 사는 방에 웬 여자 옷일까, 이상하다 싶었는데.” 누나는 계속 땀을 흘렸다. 그것이 식은땀임을 엄마도 비로소 알아챈 듯했다.
별채로 이사 온 아버지 친구 외사촌 아저씨
예쁜 원피스에서 쑥 나온 하얀 손
보름달이 뜬 날 방에서 들리는 이상한 웃음
“그 원피스에서 글쎄, 하얀 손 두 개가 쓰윽 나오는 거예요. 그러고는 저를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지 뭐예요.” 누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털썩 쪼그려 앉아 버렸다. 원피스에서 하얀 손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무서웠지만 벌벌 떠는 혜숙이 누나의 모습이 나는 더 무서웠다. 엄마는 왠지 화난 얼굴로 누나를 붙들어 일으켰다. “어린애 앞에서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 밤에 이불이라도 적시면 어쩌려고.” 누나는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는 일단 누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는 잠시 후에 돌아와 나한테 말했다. “그런 얘기, 신경 쓸 거 없다,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채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우리 집에 사는 아저씨의 방 안에 이상한 원피스가 있고 거기에서 손이 튀어나왔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파다하게 퍼지고 말았다. 내가 동네 아이들에게 무심코 떠벌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소문을 들으면 십중팔구는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며칠간 동네 아주머니와 꼬마들의 순례가 이어졌다. 평소와 다르게 워낙 여러 사람이 기웃거리니 아저씨도 금방 눈치를 챈 기색이었다. 이후로는 출근할 때마다 원피스를 가지고 나가는 건지 어디에다 감춰두고 나가는 건지 봤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혜숙이 누나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지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소문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애당초 남자 혼자 사는 방에 여자 옷이 웬 말이냐, 뭘 잘못 봤겠지. 그렇게 철없는 아이가 퍼뜨린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다들 관심을 잃었다. 하지만 아저씨와 한집에 사는 우리 가족의 사정은 달랐다. 잠잠해지기는커녕 무서운 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아저씨 방에서 밤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뚝뚝한 사람이 웃는 것 자체도 사건이었지만 더욱 으스스했던 건 아저씨가 즐겁게 웃으면서 그날 책을 팔다가 있었던 일들이며 어디서 보고 들은 재미난 일들을 말해주는 소리가 들렸다는 거다.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왔을 리도 만무한데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갔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걸어가는 뒷모습은 당장이라도 휙 고꾸라질 것처럼 보였다. 해에 따라 그림자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아저씨가 하루하루 삐쩍 말라가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엄마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그리고 나흘 정도 흘렀을까. 그날 아버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며 여느 때와 달리 일찍 귀가했다. 보름달이 환한 날이었다. 뒷방에서는 요 며칠 사이에 계속 그랬던 것처럼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문득 끊겼나 싶었는데 이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가족은 불을 끄고 집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숨을 죽였다. “내가 가서 보고 올 테니까 당신하고 혜숙이 너는 여기 있어.” 하지만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기는 엄마나 혜숙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문밖으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뒷방으로 꺾어지는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숨어서 우리에게도 ‘숨어’라고 손짓을 했다.
아저씨는 장독대 위에 서서 우리에게 등을 보인 채 밤하늘에 동그랗게 뜬 푸르스름한 달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하얀 원피스를 업고 있었다. 업은 게 아니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 해야 맞겠지만 내 눈에는 아저씨가 그 옷을 업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업고서 “저기 봐, 보름달이야, 예쁘지?”라며 달구경을 시켜 주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저씨가 몸을 흔들자 원피스는 바람에 나풀거렸다. 그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둥근 소맷부리를 따라 하얀색 안감이 엿보이는 양쪽 소매에서 밤인데도 눈에 띄는 팔 두 개가 뻗어 나와 아저씨의 목을 꼭 안고 있는 모습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채근하는 손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집으로 물러났다. 가족이 전부 한숨도 못 잔 채 밤을 꼬박 새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을 부를까, 무당을 불러 굿을 할까, 그냥 방을 빼달라고 하는 편이 나을까. 아버지와 엄마는 심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상태로 이튿날을 맞이했다. 결국 방을 빼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난 듯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출근시간에 맞춰 뒷방에 갔을 때, 아버지가 마주한 건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저씨의 주검이었다. 사인은 영양실조와 탈수. 하지만 방 안 어디에서도 하얀 원피스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옷은 대관절 무엇이었을까.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신이 없는 달>에 써놓은 것처럼 횡사한 여인의 혼이 깃든 물건인 걸까. 그렇다면 횡사한 여인은 아저씨의 죽은 아내가 아니었을까. 아저씨의 외로움이 불러낸 아내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말이 되는 것도 같다. 그래서 아내의 혼이 깃든 옷을 애지중지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끝내는 업어주며 달구경을 시켜주었던 것이다. 그 달구경 모습을 나처럼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했으리라. 아저씨는 비록 그렇게 죽었지만 만족했을 거라고. 좋은 데로 가셔서 아내와 만나셨기를. 부디.
글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일러스트 이민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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