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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9 20:00 수정 : 2017.10.30 11:46

[ESC] 김홍민의 탐정놀이

지난해 콘퍼런스 참석차 파리 도서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일정의 마지막날 ‘생투앵 벼룩시장’에 들렀다. 외국에 나가면 바빠도 서점과 시장 구경을 빼놓지 않는다. 진기한 물건을 발견하거나 낯선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대개는 그런 편이었다. 장이 서는 곳은 파리 외곽, 그러니까 지하철 4호선의 종착역인 ‘포르트 드 클리냥쿠르’(Porte de Clignancourt)였다. 이곳은 몽트뢰유, 방브와 함께 파리의 3대 벼룩시장이라고 한다. 무슨 벼룩시장이 세계적으로 3개씩이나 유명할까 싶었는데, 직접 보니 과연 규모가 굉장해서 자세히 살피려면 꼬박 하루가 걸릴 듯했다. 가구와 액세서리, 그림을 비롯하여 온갖 잡동사니가 거리 곳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한데 뒷골목이라고 할지, 한국으로 치면 예전 세운상가와 동대문운동장 근처의 좌판들이 어우러진 듯한 곳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중에 작은 시비가 붙었다. 용달차에서 파는 4유로짜리 핫도그를 오물거리며 특이해 보이는 가게들을 한 장씩 카메라에 담는데, 웬 청년 하나가 사나운 얼굴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거다. 불어니까 물론 알아듣지는 못했다. 대충 분위기를 가늠해 보니 ‘왜 함부로 나를 찍었느냐’는 의미인 듯했다. 그가 아니라 뒤쪽 가게를 찍은 거였는데. 어쨌거나 기분 나빴다니 미안하다며 ‘아임 소리’를 연발했건만 상대는 좀처럼 화를 거두지 않았다. 큰 키에 평소에도 상당한 수준의 운동량을 소화하는 듯한 그가 내 카메라를 덥석 잡았을 때는 대퇴부가 확 쪼그라들었다. 그럴 리야 있겠냐만 ‘이 대목에서 한 대 맞으면 누구한테 먼저 전화해야 하나, 프랑스국제출판사무국의 사무장님? 한국출판인회의 국장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바로 그때, 지나가던 협객……은 아니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가 그와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역시 불어로 무슨 얘기를 했는데 ‘야, 너는 뭘 그런 걸로 화를 내고 그러느냐’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상대는 그제야 돌아섰고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나를 그다음 블록까지 에스코트해 주었다. 나는 내내 긴장해 있었다. 아까 먹은 핫도그 탓인지 속도 더부룩했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가 서둘러 인사하고 서너 발자국 걸었을 때 그가 뒤에서 “헤이” 하고 불렀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빙그레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재미난 물건이 있는데 구경해 볼래?” 영어로 물어봐줘서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섬싱 인터레스팅’(something interesting)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일삼아 여기까지 왔는데 시장 구경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서려니 아쉽기도 했다. 약간 망설이던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뒷골목을 얼마쯤 걸었을까. 가는 내내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애잔한 가락이었다. 설마, 어디 이상한 장소로 데려가는 건 아니겠지. 나 같은 걸 팔아먹어 봐야 딱히 쓸모도 없을 테고. 꼬불꼬불한 골목을 몇 곳인가 지나쳐 도착한 곳은 2층짜리 케이프코드(굴뚝이 있는 오두막집)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두막의 작업실 같은 곳이었다. 인물화와 풍경화가 바닥에 놓여 있거나 벽에 걸려 있었다. 나를 데려간 남자가 직접 그린 듯했다. 그는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좀 전의 휘파람과 비슷한 풍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화구와 손으로 쓴 안내장이 보였다. ‘카드 불가, 반품 불가’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관광객 몇 명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꽤 유명한 화가인 모양이다.

그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 남자가 나에게 그림 한 점을 척 내밀었다. 엽서 두 장쯤 되는 크기의 수채화였다. 강변의 도로를 달리는 머슬 카(muscle car.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고속 스포츠카)에 탄 젊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왼쪽 팔을 문에 걸친 채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위쪽으로 해가 뜨는 풍경이 근사했다. 이러쿵저러쿵할 만큼의 식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여자의 검은 곱슬머리가 이마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살짝 미소 띤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나 있었다. 그 미소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까지 와서 그림 한 점 구입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얼마예요?” 하고 묻자 남자는 유명인사다운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원래 200유로는 받아야 하지만 너한테는 특별히 싸게 주겠다”고 그는 말했다.

100유로대면 십몇만원이니까 큰 부담도 아니다. 나는 기꺼이 값을 치렀다. 뭔가 굉장히 세련된 행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돌아서 나오려는 나에게 그가 묘한 말을 건넸다.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뭘 신경 쓰지 말라는 거냐고 물었지만 남자는 ‘쇼생크’를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 같은 표정으로 “신경 쓰지 말라구, 그건 그냥 그림일 뿐이니까”라고만 했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지도, 알아들었다 한들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얘기를 들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호텔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내내 그가 던진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냥 그림일 뿐이라니. 무슨 뜻일까. 그러다가 문득 포장된 그림 뒤쪽에 붙어 있는 조금 긴 스티커를 발견했다. 살짝 떼보니 불어로 갈겨 쓴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제목인 듯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개 여행지에서는 일행이 뭔가를 구입하면 대관절 그게 뭔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호텔로 돌아왔을 때 도서전의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출판사 대표가 대뜸 물었다. “뭐 샀어? 뭔데.” 나는 아까 그림을 구입했을 때의 충만한 기분을 다시금 상기하며 포장을 풀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 얼굴과 그림을 번갈아 응시하던 그가 보인 반응은 예상과 한참 달랐다. “뭘 이런 걸 샀어. 무섭게.” 무섭다니. 대체 어디가. 나는 그림을 뒤집어 다시 살펴보았다. 그가 볼 수 있도록 돌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나는 제목이 적힌 스티커 쪽을 보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겨울에 웃통을 벗고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파리 벼룩시장에서 싸움
지나는 협객 도움받아

구입한 여자 그림
시간마다 무섭게 변해

공포스런 그림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

그림이 달라져 있었다. 그게 첫번째 찬물 세례였다.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변해 있었다. 여자의 미소가 더 커지고 입술 사이로 드러난 송곳니가 도드라져 보였으며, 두 눈동자도 아래로 처져 역겹고 씁쓸한 표정을 만들었다. 더 커진 미소, 도드라진 이빨, 사시가 된 두 눈. 아까 내가 본 가지런한 치아와 완벽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기분 탓일까. 착시인가. 빛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 일단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두번째 찬물 세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여자가 문에 걸쳐 놓은 왼쪽 팔이 돌려져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감춰졌던 문신이 보였다. 넝쿨에 감긴 단도였는데 그 끝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에브리싱스’(Everything's. 모든 것)

그날은 귀국을 몇 시간 앞둔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근처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지난 열흘 동안 마주한 이국적인 풍경과 프랑스 도서전에서 느낀 감상과 한국에서 타전된 뉴스가 주된 화제였다. 그러나 “살아생전에 또 프랑스에 올 수 있을까” 하는 객쩍은 농담을 듣는 동안에도 그림에 관해 고민하느라 내 머릿속은 분주했다. 또 변했을까.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뭔가에 홀린 걸까.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사본 적이 없는 그림을 프랑스까지 와서 구입했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이렇게 기괴한 그림인 줄 몰랐던 거다. ‘매직아이’도 아닌 마당에 그림이 변할 리가 있나. 처음부터 잘못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진탕 마셨다. 마지막 밤이니까. 술자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에 가려면 이제 호텔로 돌아가 짐을 싸야 한다.

“잘못 본 거라니까.” 호텔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듯이. 짐을 정리하는 중에도 그림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문 뒤에 자신을 죽이려는 ‘그것’이 숨어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굳이 문을 열어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게 인간이더라는 내용의 문장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완벽하게 짐을 꾸리고 여행용 캐리어의 자물쇠를 채우기 직전, 나는 엎어두었던 그림을 돌려서 살펴보았다. 그 순간을 촬영했다면 아마도 내 입에서 빠져나오는 한기가 찍혔으리라.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림이, 또 변했다.

여자는 이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광기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 나를 보고 웃는 게 분명했다. 뾰족하게 갈아놓은 듯한 이빨은 잇몸을 완전히 드러냈고, 두 눈은 증오와 환희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해가 뜨던 풍경은 사라졌다. 그림은 어둠 속에 묻혔다. 머슬 카는 강변이 아니라 변두리의 어느 골목에 멈춰 있었다. 배경이 낯설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내가 다녀온 생투앵 벼룩시장과 흡사했다. 여자의 왼팔은 완전히 돌아가서 문신 전체가 드러났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에브리싱스 이벤추얼’(Everything's eventual.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여자는 정신질환 범죄자들만 전문으로 수용하는 감옥에서 막 탈출한 메탈리카(미국의 헤비메탈 밴드)의 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림의 여자 옆 좌석에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아까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 순간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광경이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기 직전, 나는 그림을 공항 화장실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공항 쓰레기통에 있어야 할 그것이 여봐란듯이 벽에 걸려 있더라는 공포영화적 결말 같은 건 물론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다만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며 놀라긴 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라는 제목이었다.

작가는 변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썼다고 한다. 그렇군. 한때는 나도 그런 걸 좋아했는데. 하지만 변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이제 읽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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