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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강하게 밀어붙인 법무부의 주역들. (왼쪽부터) 황희석 인권국장 겸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 조국 전 장관, 김남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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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74)
법무부, “10월 말까지 금지방안 마련”
적폐수사 때 ‘검찰 흘리기’ 방치하다
‘공인’ 조국 전 법무장관 부임 뒤 추진
‘일벌백계·본보기’ 법무부 경고 불구
경찰은 화성 사건 피의사실 ‘깨알’ 공표
기준·의지 모호…충분한 논의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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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강하게 밀어붙인 법무부의 주역들. (왼쪽부터) 황희석 인권국장 겸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 조국 전 장관, 김남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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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법조 동네 핫 이슈 중 하나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이해 당사자’인 조 전 장관과 여권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갑자기 논란이 커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조 장관 일가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며 지난 2일 조국 일가 수사팀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6일엔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아예 법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일정도 가시화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6일 “피의사실 유포에 관한 개혁안 등도 바로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법무부도 지난 14일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난 뒤 “관계기관의 의견 수렴을 거쳐 피의사실 공표 금지 방안을 10월 중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작은 조 전 장관 부임 뒤 법무부가 강경 대응을 공개적으로 예고하면서다.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으로 임명한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은 지난 1일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진행자 김씨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어준: 그런데 (피의사실 공표를) 어떻게 막죠?
황: 결국은 하나의 본보기가 있어야 되겠죠.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일벌백계라는 말을 우리가 쓰고 있지만 이 본보기가 필요하고, 일단 규정이 시행된 이후가 되겠지만 그 규정을 엄격하게 집행을 하면 좀.
김:
한 놈만 걸려라, 이런 거 아닙니까?
황:
제가 그렇게 말을 쓰기는 좀 그렇고요.
황 국장이 벼르고 있는 검찰의 ‘기사 흘리기’는 조 전 장관 수사 이전부터도 심각했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처럼 야권이 표적이 된 수사일수록 정도가 심했다. ‘검찰의 기사 흘리기→피의사실 보도→검찰·여권의 활용’ 패턴은 무수히 반복됐다.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는 날 아침 핵심 피의자의 피의사실이 ‘단독’ 타이틀을 달고 보도되는가 하면, 검사의 수사 보고서에나 있을 법한 내용이 저녁 방송의 전파를 탔다. 그러면 검찰 수사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고, 여권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야권 공격의 호재로 써먹었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 들어 여야가 ‘공수교대’를 한 뒤에도 변함없이 되풀이됐다.
“검찰의 ‘기사 흘리기’는 문 정부 들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수사 중인 검찰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구체적인 피의사실이 ‘단독’, ‘특종’이란 타이틀을 달고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됐다. 2년 넘게 그런 일이 계속됐는데도 조 전 장관 수사 이전에 법무부나 검찰이 문제 삼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검에 ‘인권부’를 만들고, 일선 검찰청에 ‘인권감독관’을 신설했지만,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형법의 피의사실 공표죄(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면 처벌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넘게 계속된 검찰의 기사 흘리기는 ‘딱 떨어지는’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도 활동 종료 직전인 지난 5월28일 ‘피의사실 공표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준엄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피의자를 압박하고 유죄의 심증을 부추기는 여론전을 벌이는 등 관행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음. 반대로 수사에 부담이 되는 경우 형법 규정에 기대어 언론의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 이 과정에서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파편적 사실들이 여과 없이 보도됨으로써 국민들 사이에 해당 사건에 대한 선입견이 형성되고, 이는 향후 재판 결과를 불신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됨.”
그러면서 ‘(가칭)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그때 법무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박상기 장관뿐 아니라 요즘 ‘일벌백계 본보기’를 찾고 있는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도 마찬가지다. 2017년 9월 법무부의 ‘탈검찰화’ 바람을 타고 인권국장에 임명된 그는 검찰의 기사 흘리기가 만연한 적폐수사 때도 줄곧 그 자리에 있었다. 인권국장은 “수사 등 법무행정 분야의 인권침해 예방과 제도 개선, 인권침해 사건의 자체 조사”(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11조의2 제2항) 권한을 갖고 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당시에 그는 “직무유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황 국장이 갑자기 피의사실 공표 엄단 방침을 들고나온 시점과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가 겹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민주당이 고발까지 한 ‘피의사실’의 당사자, 조 전 장관도 다르지 않다. 그는 검찰의 적폐수사와 사법 농단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민정수석의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비서실 업무분장표'를 보면 민정수석은 “공직자 복무점검 및 직무감찰 업무”와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법률 보좌”를 하게 돼 있다. 그는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점검’하고, 필요하면 ‘직무감찰’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과 관련해 지난 9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일관되게 추진해온 것”이라며 자기 가족 사건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무부의 규정 개정은 “일관되게” 추진돼온 게 아니다. 적폐수사·사법 농단 수사가 진행된 시기엔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월, 서울동부지검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 상황이 언론에 상세히 보도된 이후부터 검토가 시작됐다.” (법무부 관계자) 이를 전면화한 것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이 부임하고 나서다.
민주당의 변신도 놀랍다. “특별검사 또는 특별검사의 명을 받은 특별검사보는 (특검법에 규정된) 사건에 대하여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하여 피의사실 외의 수사과정에 대하여 언론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 3년 전 야당이던 민주당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국정농단 특검법에 이 조항을 넣자고 주장해 기어코 관철했다. 비록 ‘피의사실 외’라는 단서가 달려있긴 했으나 수사 상황에 대한 특검의 정례 브리핑이 이뤄졌고, 피의사실은 ‘다른 경로’를 통해 언론에 상세히 알려졌다.
예를 들어, 특검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 의혹을 받던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컬 대표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통화 내용 등이 언론에 보도되자 자유한국당은 피의사실 공표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특검법 발의에 앞장섰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특검이 대국민 보고 조항을 갖고… 국민에게 당연히 알리는 것은 옳은 태도이고 바른 방법”(2월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이라고 두둔했다.
검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뒤 민주당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전까지 언론의 검찰 수사 상황 보도와 관련해 우려조차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러다 검찰이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해 대규모 압수수색을 벌인 지난 8월27일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의 컴퓨터 속 메모가 한 종편에 보도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해찬 당 대표), “검찰의 적폐 행위”(이재정 대변인)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검찰이 적폐 수사를 하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걸까.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아니면 말고’ 식 망신주기 수사로 사람이 죽어 나갈 때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우리 편’이 수사받게 되니 일벌백계를 경고하는 위선적 태도가 놀랍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법관 출신 변호사)
그렇다고 피의사실 흘리기가 계속돼도 하는 수 없다고 말하는 법조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의 수사 목적 달성을 위한 “주홍글씨 찍기, 망신주기 수사 관행”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조국 수사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찰의 행태는 여권의 ‘일벌백계’ 경고를 무색하게 만든다.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아무개씨의 피의사실을 아무런 제지 없이 매일, 실시간으로 공표하고 있다. 포털에서 ‘이○○’를 치면 기사가 주르륵 뜬다. ‘수원 여고생·화성 초등생·청주 여공·주부 살인 다 이○○의 짓’, ‘경찰, 이○○ 자백 사건 14건 공개…“초등생 실종도 포함”’, ‘“초등생도 무참히 성폭행 살해”, ‘이○○ 범행동기 성도착증 있나’, ‘희대의 강간 살인마 이○○의 살인게임’… 이런 식의 기사가 수천 건에 이른다.
과거사위 지적대로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파편적 사실들”이 경찰의 입을 통해 공표되면서 이씨는 이미 ‘진범’으로 낙인 찍혔다. 경찰이 대놓고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피의자를 압박하고 유죄의 심증을 부추기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지만 사법경찰을 통제해야 할 법무부는 물론 경찰 지휘부도 팔짱을 끼고 있다. 더욱이 이씨의 혐의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수사 없이 각하해야 할 사안(검찰 사건사무 규칙)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날마다 새로운 사실을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이씨만이 아니다. 제주에서 전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고아무개씨의 얼굴과 피의사실도 ‘공판 청구 전’에 낱낱이 공개됐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가 한창일 때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아들의 피의사실도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모두 경찰 발이다.
이러니 “피의사실 공표 금지 추진은 조 전 장관 수사를 의식한 임시방편 아니냐”(검찰 관계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조국 따로 이씨 따로’를 보며 드는 의문점은 한둘이 아니다. 기왕 수감돼 있는 무기수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강력범의 피의사실은 공판 청구 전에 마구 공개해도 되는가.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에만 해당하고, 경찰은 예외라는 법 조항이라도 있는가. 경찰은 아마도 국민의 알 권리를 말할 텐데, 그럼 유명한 공인인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는 국민적 관심사가 아닌가. 왜 이씨나 고씨의 혐의는 실시간 중계되고, 조 전 장관 수사 상황은 알려지면 안 되는가. 무기수 이씨와 피의자 조국의 인권은 질적으로 다르기라도 하다는 것인가.
법무부가 어떤 최종안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지만,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와 어떻게 조화를 찾을 것인가부터가 난제다. 민주당이 공언한 법률 제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정치인·고위 공직자·대기업 총수 수사에 착수했다는 말이 나온 뒤 기소 또는 불기소하기까지 짧아도 한 달, 길게는 몇 달간 아무 보도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을까. 그 사이에 일반 국민은 해당 수사의 진행 경과에 대해 전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외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수사가 왜곡될 가능성은 누가 감시하는가. 하나하나가 충분히 토론되지 않으면 안 될 주요 논점이다.
지금은 수사 중인 사건의 보도가 갖는 부정적 측면만 극대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외압’을 받아 난관에 봉착한 검찰이 언론의 힘,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 수사에 성공한 정반대 사례도 있다.
20년 전인 1999년 9월5일 서울지검 특수1부는 현대전자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대검에 보고했다. 앞서 ‘종범’인 박아무개 상무를 구속한 검찰은 ‘주범’인 이 회장 구속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외환위기를 넘긴 지 얼마 안 된 당시 여권 입장에서 ‘코스피 4000시대’ 호언장담하던 이 회장은 경제 부흥전략의 아이콘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수사팀에 ‘구속 절대 불가’ 사인이 ‘하달’됐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수사팀은 언론에 ‘외압’ 사실을 알렸다. 다음 날 한 일간 신문 1면에 “여권 핵심부, ‘이익치 회장 선처해달라’ 검찰에 압력” 기사가 나오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게 누구 짓이냐’며 진노했다. 비로소 청와대가 ‘무장해제’됐다. 수사팀에 ‘영장 청구해도 좋다’는 총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 길로 구속된 이 회장은 재판을 거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유죄가 확정됐다. “그때 이 회장을 구속하지 않았으면 그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을 것이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
이건 일종의 ‘내부 고발’이지만, 법대로 하면 ‘딱 떨어지는’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를 범죄로 보고 처벌하는 게 맞을까, 거악 척결이란 대의 앞에서 모른 척 하는 게 옳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에서 ‘스모킹 건’의 하나가 된 ‘BBK 특검’의 비자금 추적 내역도 어느 검사의 제보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일이다.(
법조외전(8) ‘다스 비자금 단서, 검찰 캐비닛에 있다’ 참조)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적지 않다.
중요한 건 법무부가 정한 ‘10월말’ 시한이 아니라 거기 담길 내용과 그걸 정해가는 과정이다. 전면 금지의 실효성과 부작용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논의를 숙성시키려면 밟아야 할 단계와 절차가 많이 남았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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