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의 법조외전⑪
대법원, ‘대법원장 활동비’ 등에 필요하다며
영수증 필요없는 ‘특활비’ 2억5천만원 편성
법원은 ‘정보·사건 수사’하지 않는데도 청구
헌재에도 없는 걸 2015년부터 꼬박꼬박 타가
김명수 원장이 ‘특활비 NO’ 선언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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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을 강조하는 김명수 원장이 취임했지만 대법원의 특활비 예산 청구는 바뀌지 않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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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특활비)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특활비를 임의로, 사적인 용도에 가져다 썼다 해서 검찰이 뇌물 혐의를 두고 수사 중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어찌어찌 ‘목숨’을 부지한 것 같던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그 돈의 전달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고, 전직 국정원장들의 혐의 사실에도 이 부분이 들어가 있다.
특활비 불똥은 지난 정부에서 최고 실세라던 최씨 성 가진 야당 의원에게도 옮겨 붙었다.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은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예산 문제를 들고나와 ‘물타기’라는 비판과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특활비는 지난 5월부터 또다시 문제가 됐었다. <한겨레>가 보도한 이른바 ‘돈봉투 만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4707.html)에서 문제의 봉투 속 돈이 바로 특활비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지금껏 반년 넘게 특활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활비는 말 그대로 ‘특수활동’을 하는 기관을 위해 따로 편성해주는 예산이다. 국가 예산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서 발간한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을 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와 그 밖에 준하는 기타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돼 있다. 그래서 지급 시기와 지급 상황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란 게 없다. 예산 집행 담당자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준 돈이다. 어디에 썼는지를 증빙할 필요, 즉 영수증 제출 의무도 사실상 면제된다. 심지어 감사원 감사대상에서도 열외다.
아마도 <한겨레>의 ‘돈봉투 만찬’ 보도가 없었다면 그날 저녁 모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참석자들은 별 생각 없이 특활비가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가 직원들 밥을 사든 개인적 용도에 쓰든 했을 것이다. 특활비를 그렇게 쓴 공직자가 검찰에만 있을까. 가장 많은 특활비를 책정받는 국정원 예산을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사금고’쯤으로 인식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에서 특활비 논란은 정점을 찍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국민이 낸 귀한 세금을 이렇게 ‘눈먼 돈’처럼 함부로 쓰도록 방치해 둘 거냐, 아무리 정보·수사 기관이라고 해도 이젠 과거처럼 제멋대로 국가예산을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여론이 커져가는 상황이지만, 유일한 ‘무풍지대’가 하나 남아 있다. 그것도 서초동에.
바로,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내년 예산에도 특활비를 2억5600만원이나 편성해 국회에 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액수가 얼마 안 되네?’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법원에 특활비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법원에는 기재부 작성 ‘예산…지침’에 명기된 ‘정보·사건 수사, 그밖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해당하는 직무가 없다. 대부분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재판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법원에서 보안과 기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영수증을 끊을 필요가 없거나 끊어서는 안 되는 은밀한 업무라는 게 달리 있을까. 게다가 대법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비슷하게 재판 업무를 보는 헌법재판소 예산에는 아예 특활비가 없다.
당연히 국회에서도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국회를 출입하는 김규남 기자(정치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법원은 특활비의 세목을 묻는 국회 법사위 소속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질의에 “대법원장 활동비와 고법 윤리감사관실 감찰비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법원장 활동비라면 일반 행정기관의 기관장 업무추진비쯤 될텐데, 그 돈을 특활비로 쓰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활동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과거 대법원장들의 동정 기사를 보면 각급 법원 시찰이나 외부 행사 참석, 가끔 있는 해외 대법원 방문 등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이런 활동에 영수증을 끊지 않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대법원장이 국정원장도 아닌데.
직무감찰에 특활비 예산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설명은 합당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간부는, “법원이 검찰보다도 더 구태의연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검찰 내부 사정과 비교하며 말을 이어갔다. “과거에는 검찰도 지방 검찰청 또는 지청 사무감사 때 특활비를 가지고 내려가 전달했다. 지검장 혹은 지청장 ‘격려금’ 이런 명목으로. 해당 청 규모에 맞게 액수를 달리했고. 결국 이 돈은 (해당 지검장이나 지청장이) 감사팀과 같이 회식하고 하는 데 쓰였다. 그러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감찰 내려가는 팀에다 아예 예산에서 ‘사무감사 활동비’라고 해서 교통비와 식사비를 준다. 공연한 시비의 소지를 남겨둘 필요가 없지 않겠나. 일선에선 수사비도 특활비로 주지 말고, 아예 ‘특정업무경비’로 해서 달라고 한다. 그러면 영수증 제출 등 증빙 의무가 따르지만, 수사 검사들도 그 쪽을 선호한다.” 정작 특활비에서 감찰 비용을 쓰던 검찰은 그 관행을 없앴는데, 법원이 뒤늦게 따라하겠다고 나선 셈이 됐다.
더욱이, 법원 예산에는 애초 특활비라는 항목 자체가 없었다. 통상적인 재판 업무와 관련한 예상 집행에 기밀과 보안이 필요할 리 없었으니까. 그러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도 대법원 예산안에 특활비라는 항목이 처음으로 생겼다. 왜 이 무렵 전례 없는 항목이 신설됐는지를 두고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달래려는 ‘정권의 선물’이라는 얘기가 있다. 양 원장은 ‘상고법원’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으려고 열심이었지만, 청와대는 몹시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상황을 아는 한 법조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상고법원이란 게 결국 고위직 판사 숫자를 늘리고, 그 판사들의 인사권을 지렛대 삼아 대법원장이 자기 권한을 강화하려는 꼼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예전에 없던 특활비 예산을 편성해준 시기를 감안하면, 상고법원 설치를 안 들어주는 대신 양 대법원장을 달래려는 대통령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확한 내막은 대통령과 양 원장 정도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특활비는 국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제19대 국회 때인 2015년 10월28일 국회 법사위에서 오고 간 문답이다. 그날 회의에서 그나마 문제의식을 갖고 질의를 제대로 한 의원은 김진태 위원(자유한국당) 한 사람뿐이었다.
-김진태 위원: 법원행정처장님.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예.
-김 위원: 법원의 특수활동비가 얼마예요?
=박 처장: 금년도에 처음으로 3억 편성되어 있습니다.
(중략)
=박 처장: 법원도 인원이 2 만 명에 육박하고 전국 도처에 기관이 있기 때문에 , 또 직무감찰이나 이런 활동을 감사원 , 행정부에 의뢰해서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기밀성이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 그래서 필요 최소한이 반영된 예산입니다 .
(중략)
-김 위원: 그런데 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법원도 특수활동비가 필요해요 , 재판기관이 ? 지 금 특수활동비 가지고 온 정부 부처가 홍역을 치르고 예결위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자 , 뭘 만들자 그러고 있는데 금년에는 법원이 새로 이것을 해 가지고 넣었다고요 , 3 억을 ?
=박 처장: 2015년 예산에 들어 있던 것입니다. 2016년 예산은 동액으로 편성이 됐는데 그것을 10% 감액한 것입니다.
-김 위원: 언제부터 편성됐어요, 몇 년도부터?
=박 처장: 2015 년부터 편성됐습니다 . 금년도 현재 집행 중에 있습니다 .
-김 위원: 그러니까 이게 이해가 안 되고요. 특 수활동비의 요건 , 우리가 그렇게 얘기하는 기밀성이 첫 번째 요건인데 법원에서 특수하게 활동할 일이 뭐가 있어요 ? 공개재판 하는 데 아니에요 ? 공판중심주의 아니에요 ? 그것 하는데 무슨 이것을 한다고 그러고….
( 중략)
-김 위원: 하여튼 법원의 특수활동비라는 것은 저는 안 맞는 것 같고요, 10%만 감액한 것도 좀더 감액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박 처장: 답변 말씀드리면 법원도 삼권분립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직무감찰이라든지 이런 활동이 필요한 조직입니다. 기밀성이 있는 활동이 필요한데 그것을 행정부에서, 감사원이나 이런 데서 개입해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사법 행정에 관한 비닉성이 필요한 정보수집활동이나 이런 것이 필요하고 그것의 1년 총예산이 3억입니다. 필요 최소한으로 반영됐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 처장의 답변이 끝나고 이상민 당시 법사위원장이 “다른 위원님들?” 하고 추가 질의 여부를 물었지만, 법원 특활비를 따져 묻는 법사위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뒤로 대법원은 2016년 3억2천만원, 2017년 3억2천만원을 꼬박 집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감찰비용이라는 기존 세목에 덧붙여 ‘대법원장 활동비’라는 또다른 구실을 추가했다.
그런데 왜 법사위원들은 조용히 넘어갔을까. 2015년 10월28일 회의뿐 아니라, 법원이 특활비를 처음 요구했을 때부터 그 이후 최근까지 왜 다들 침묵하는 것일까.
법무부에 근무하며 대 국회 업무를 맡아본 검찰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법사위원 한 분을 만났는데, 대뜸 그러더라. ‘검찰이 법원처럼만 하면 좋을텐데. 법원이 국회에 하는 것의 반의 반, 그것도 어려우면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해봐라. 그럼 검찰이 얻어가는 게 많을 거다.’ 이 말에 많은 게 함축돼 있다고 느꼈다.”
서초동에 떠다니는 얘기 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법원행정처의 고위 인사가 어느 날 밤 집에서 쉬다 법사위원의 전화를 받고는 그야말로 ‘맨발’로 뛰어가 만취한 ‘그 분’을 ‘댁’까지 무사히 모셔 드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 국회의원은 자기 운전기사도 있을 텐데 취중·심야에 왜 하필 행정처 고위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는 불문가지의 영역이다.
또 정치인들이 이른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인 이상 법원과 잘 지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자칫 발을 헛디디거나 미끌어져 교도소 쪽으로 떨어질 위기가 닥쳤을 때 혹시 굵은 동아줄을 내려뜨려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문제의 특활비는 어디에 쓰였을까? 그건 세목을 제출할 의무가 없으므로, 법사위원들도 모른다. 다만, 이런 얘기 정도는 들린다.
“법사위 회의나 국감 등이 끝나고 나면 출석했던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법사위원들을 ‘모시고’ 밥도 먹고 술도 한다. 우연히 같은 음식점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저 양반들이 판사 맞나’ 싶을 정도로 의원들에게 잘하더라. 당연히 피감기관 쪽이 사는 건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결산할 때 뭐라고 쓰려나, 그런 게 궁금했다.”(국회 파견근무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
특활비의 폐단을 없애려면 해당 국가기관이나 기관장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제법 힘 있는 기관의 장을 맡아본 한 변호사의 얘기다.
“기본적으로 특활비는 ‘먼저 가져다 쓰는 놈이 임자’라는 의식이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예산이 짜이고, 그것 때문에 국회에도 가보고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어느 기관 할 것 없이 ‘어차피 누군가는 가져갈 테니 우리도 가져다 쓰자. 저런 돈 못 타 쓰는 기관만 바보’라는 생각들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법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마침 어제(27일) 국회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1000억원이나 깎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원장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특활비 규모도 예년 60억원에서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물론 희대의 ‘범죄’에 연루됐으니 당연한 ‘응보’일 수 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그냥 가자’가 대세인 정치권이 이런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은, 특활비에 대한 국민의 냉엄한 비판 여론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차제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스스로 이런 선언을 하면 어떨까. ‘법원은 더 이상 특활비가 필요하지 않다. 대법원장 활동비나 내부 직무감찰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반 예산에서 집행하겠다’고. 그게 일반 국민도 쉽게 알 수 있는 사법부 개혁의 하나가 아닐지.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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