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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3 10:35 수정 : 2018.12.24 10:25

지난 20일 서울 목동 한국전파진흥협회 대강당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통신재난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재섭 기자

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_올해 안 통신재난 대책 마련?

정부-통신업자 개선안 급조해
‘맛보기’식 해법에 그칠 공산 커

지난 20일 서울 목동 한국전파진흥협회 대강당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통신재난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재섭 기자
“통신재난에 어느 수준까지 대비할 것이냐는 비용·투자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조 단위 금액도 언급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다.”

“망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데 투입할 비용을 어디까지 책정해야 할지 고민된다.”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열린 ‘통신재난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업자 쪽 대표 토론자로 나선 통신 3사 임원들이 한 말이다. 한결같이 ‘통신재난 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시작해 ‘비용 때문에 걱정이다’로 끝맺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용 문제를 꺼낼 정도면, 내부 회의 등 비공개 자리에서는 비용 문제를 내세우며 통신재난 대응 수준을 낮추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케이티(KT) 아현동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 사태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 몫이었다. 이동통신·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 이용자들이 전화통화나 인터넷 접속이 안 돼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었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물론 택배기사, 대리기사와 퀵서비스 사업자 등 유무선 통신을 생계 기반으로 삼는 이들은 일이나 장사를 하지 못했다. 전화 불통으로 119 구급차를 부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자부해온 이 나라의 서울 도심 4개 구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최대 일주일까지 지속됐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5600여만명으로 국민 수보다 많다. 새 이동통신(5G)과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통신재난 발생으로 인한 이용자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 통신구 화재 규모는 1994년(종로 5가)과 2000년(여의도)이 더 컸지만, 통신대란 피해는 이번이 더 컸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기정통부가 즉각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연말까지 근본대책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도 파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1월24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3일 정부와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기정통부는 오는 27일 유영민 장관이 통신 3사 최고경영자를 불러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통신사 최고경영자 쪽이 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자, 대안으로 민원기 2차관이 통신사 네트워크관리 책임자들과 양해각서를 맺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정대로라면 과기정통부가 통신재난 관리·대응체계 개선안 시행에 앞서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서라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절차는 물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과기정통부가 통신사업자들과 ‘밀실’에서 만든 개선안을 보도자료나 언론 브리핑을 통해 ‘맛보기’식으로 설명하고 마무리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직 이번 통신구 화재와 관련해 발화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피해 보상 방안을 놓고도 논란이 크다. 통신대란이 발생한 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과기정통부 역시 화재 및 통신대란 대응 과정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번에 유독 통신대란 피해가 컸던 이유가 뭔지, 정책·법·제도가 제대로 수립돼 운영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와 분석, 평가를 충분히 했다고 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런 마당에 통신 사업자들은 비용 문제를 들고나왔다.

이래서는 과기정통부 차원에서 이번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 뒷수습을 마무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를 받기는 어렵다. 이날 토론회 뒤 참석자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도 “사업자들이 공개적으로 비용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제대로 된 개선안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과기정통부가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 전에 이를 매듭짓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안을 만들어 시행하기 전에, 국민에게 왜, 어떤 이유로 개선했는지 설명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온 국민이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2017년에만 42조71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3조439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나 설비투자는 2013년 이후 해마다 큰 폭으로 줄였다. 지난해에도 전년에 견줘 5% 넘게 감축했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강홍렬 박사는 “통신재난 대응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응 계획과 매뉴얼이 공급자 쪽 아이디어 중심으로 비밀스럽게 만들어지고 시행되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합의와 이용자 동의 과정을 밟아, 국민들이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인식해 감시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과기정통부가 사업자들의 통신시설 관리실태 점검 결과를 얼마나 공개할지도 주목된다. 사업자 쪽 말을 들어보면, 적발된 게 꽤 많다고 한다. 케이티의 한 직원은 “이번 전파관리소 현장점검을 앞두고 통신구 등에 대해 대대적인 청소 작업을 했는데, 그동안 불이 안 난 게 이상할 정도로 먼지와 쓰레기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점검 결과를 적나라하게 공개해야 이용자들이 개선책을 평가할 수 있고, 과기정통부가 사업자들에게 강도 높은 통신재난 대응을 요구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쪽은 “20일은 토론회를 했고, 태스크포스에서 더 깊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개선안 공개 없이 아이디어를 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요식행위’라 해도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재난 전문가인 강휘진 서강대 교수는 “화재에 따른 통신 장애는 사업자 책임이지만, 이어진 통신대란은 과기정통부 책임”이라며 “과기정통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가 책임을 사업자에 돌리며 호통치고, 태스크포스 뒤에 숨는 모습으로는 온전한 개선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과기정통부의 호통을 받아주는 대신 통신재난 관리·대응 수준을 낮추는 실리를 챙기고, 그 대가를 이용자들이 치르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한 통신사 임원의 말이 현실이 될까 우려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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