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3 15:49
수정 : 2017.02.10 11:18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갑작스런 단통법 개정 논란
갑자기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 논란이 뜨겁다. 정부 내 엉뚱한 곳에서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 불길이 일더니 일부 언론의 풀무질 바람을 타고 관련 정책을 맡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쪽을 거세게 위협하는 모습이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빠르게 번져오는 불길이 무서웠던지 “충분한 의견 수렴과 다양한 논의를 거쳐 정책방안을 검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말려들어가는 모습이다.
현행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말기 유통법)은 출고된 지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단말기에 대해 지원금을 33만원까지만 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단말기 지원금이란 이동통신 가입자들에게 단말기 값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제조사와 이통사들이 지원금 제도를 악용해 이용자를 차별하거나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를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제조사와 일부 이동통신 유통점 등은 이게 단말기 시장을 옥죈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가 이용자를 위한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사 지원금 분리 공시제 도입’과 ‘단말기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약정할인)율 상향 조정’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만 건드리면 이용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제조사와 이통사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조처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제조사 지원금 분리 공시란 단말기 지원금 재원 가운데 제조사가 부담하는 게 얼마나 되는지를 따로 공개하자는 것이다. 단말기 유통법이 상임위를 통과할 때까지는 들어있었는데,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제조사들의 ‘작업’으로 빠졌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단말기 유통법 시행 전에는 단말기 제조사와 이통사들이 짬짜미해 단말기 출고가를 높인 뒤 고가 요금제 가입자한테는 높인 출고가만큼 지원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 이동통신 가입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행위가 성행했다. 스마트폰 출고가가 100만원을 넘는 수준까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란다. 제조사 지원금 분리 공시제 도입 없이 단말기 지원금 상한만 폐지하면 이런 병폐가 재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조사가 이통사와 짜고 단말기 신제품 출고가를 20만~30만원 높인 뒤 월 8만원 이상 고액 요금제 가입자한테만 지원금을 그만큼 올려주는 상황을 예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말기 제조사는 단말기 출고가를 높게 유지하면서 시장지배력도 높이는 이점이 있다. 이통사들은 고가 요금제 가입자를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단말기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 반면 이용자들은 단말기값과 통신요금 부담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 단말기 유통법 시행 뒤 완화 추세를 보였던 가계통신비 부담이 다시 커지는 것이다. 삼성전자 등 자금력이 풍부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조사의 단말기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시장의 탄력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은 단말기를 잘 관리하며 오래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역차별을 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름에서도 보듯 지원금 규모에 상응해 요금 할인 비율이 높아지게 돼 있다. 2014년 10월 단말기 유통법 시행 때는 12%였다가 지난해 4월 단말기 지원금 상한이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높아지는 때에 맞춰 20%로 상향 조정됐고, 4월 말 현재 600만명 정도가 가입한 상태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로 지원금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해 요금 할인 비율도 높아져야 한다. 아니면 단말기 지원금 대신 요금할인 선택자들이 역차별을 받는 문제가 또다시 발생한다.
이런 점 때문에 방통위와 미래부는 지난 4월 단말기 유통법 시행 1년6개월을 맞아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어 법 시행 효과 및 부작용 해소책 마련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에도 알뜰 소비 바람이 불면서 저가 스마트폰 비중이 늘었을 뿐 전체 단말기 보급 대수는 줄지 않았다. 지원금 상한 및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 비율은 손대지 않겠다”고 못박은 바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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