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2 06:01
수정 : 2019.04.12 19:39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수요일의 전쟁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주니어RHK(2017)
고백하자면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다. 평범한 아이들이 책을 읽어가며 성장하는 유형의 동화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책에 비추며 스스로 살아가야 할 이유와 희망을 찾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책을 만나 참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는데, 실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수요일의 전쟁> 역시 이런 얼개를 지닌 청소년문학이다. 대개 이런 책들은 차분하고 정적으로 전개되는 데 반해 <수요일의 전쟁>은 유쾌한 소동과 유머가 잔뜩 담겼다. 일생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크로스컨트리, 양키스의 야구 개막전, 캠핑 그리고 심지어 교실에서 기르던 쥐가 사라져 혼비백산하느라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카밀로 중학교 아이들은 수요일 오후면 종교 수업을 들으러 성당으로, 유대인 교회로 떠나는데 홀링 후드후드만 갈 곳이 없다. 베이커 선생님마저 홀링과 단둘이 교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홀링은 자유시간을 빼앗긴 선생님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후 시간에 함께 셰익스피어를 읽자고 하겠는가. 홀링을 지루하다 못해 죽게 만들 의도가 분명했다.
처음 선생님이 건네준 책은 <베니스의 상인>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다음으로 읽은 <템페스트>는 더 재미있다! 이유는 “두꺼비, 딱정벌레, 불벼락 맞을 놈!”, “남서풍이 확 불어 내 몸 사방팔방에 물집이나 확 생겨 버려라!” 같은 욕이 나오기 때문이다. 홀링은 책에 나오는 저주를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학교에서 써먹는다. 고전 속에 나오는 이 어려운 표현을 친구는 물론 교사들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묘미다.
매주 수요일마다 홀링이 읽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의 현실과 맞물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을 때는 여자 친구 메릴 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작품 속에 나오는 “그들의 칼 스무 자루보다 당신의 눈 속에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소. 정다운 눈길로 봐 주시오”라는 대사를 멋들어지게 읊어 승낙을 얻어낸다. 하지만 홀링의 아버지와 메릴 리의 아버지는 비즈니스 라이벌이다. 마치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처럼. <햄릿>을 읽을 무렵에는 누나가 가출하는 바람에 홀링까지 고민이 많아진다.
작품의 배경은 1968년 즈음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만큼이나 현실도 녹록치 않다. 베트남전쟁에 미군이 참전했고, 비틀스의 인기가 전 미국을 휩쓸었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암살을 당했다. 홀링과 함께 셰익스피어를 읽는 베이커 선생님의 남편 역시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상태다.
<수요일의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홀링이 마지막으로 읽는 희극 <헛소동>에 답이 있다. 베이커 선생님은 희극이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에 마음대로 해피엔딩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해준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은총과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을 뿐이다. 홀링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인 이유다. 중학교 2학년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