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랄슨 선생님 구하기
앤드루 클레멘츠 글, 김지윤 그림, 강유하 옮김/내인생의책(2004)
기획동화라는 게 있다. 메시지가 앞선 이야기다. 반대로 보통의 문학은 이야기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의미는 독자가 생각한 만큼 찾을 뿐이다. 순서가 좀 바뀌었을 뿐이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멀다.
한데 간혹 이 법칙에 예외적인 작품들을 만난다. 앤드루 클레멘츠의 동화들이 그렇다. 주제가 명징하고, 때때로 주인공인 교사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묘하게 앤드루 클레멘츠의 동화는 이야기가 살아 있다.
예컨대 <프린들 주세요>는 언어의 생성과 변화를, <황금열쇠의 비밀>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해와 화해를, <꼬마 사업가 그레그>는 바르게 돈을 벌고 쓰는 일을 주제로 삼았다. 또 <랄슨 선생님 구하기>는 언론의 자유를 말한다. 이렇게 메시지가 도드라진 동화라면 어느 정도는 식상하고 진부하기 마련이거늘, 앤드루 클레멘츠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감동을 자아낸다.
이유는 모든 사건이 아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아이들로 끝나기 때문이다. 동화 속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때로 실패와 고난을 겪지만 이 경험은 아이들을 더 큰 배움과 성장으로 이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지지하고 기다리는 최고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심지어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보내던 교사가 아이들에게 감동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랄슨 선생님처럼 말이다.
5학년 카라 랜드리는 부모의 이혼으로 좀 화가 난 상태다. 심지어 모두가 꺼리는 랄슨 선생님 반이 되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그럴듯한 교육관을 지닌 랄슨 선생님은 정작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 없다. 매일 학생들에게 읽을거리를 던져주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만 읽는다. 당연히 교장과 학부모들은 탐탁지 않다.
그러던 중 랄슨 선생님한테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카라가 만든 ‘랜드리 뉴스’가 진원지였다. ‘우리 반의 선생님은 랄슨 선생님인가, 학생인가?’라고 쓴 이 신문의 사설이 대단한 반향을 불러왔다. 카라는 사설에서 교사가 가르치지 않고, 학생이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교사의 봉급은 아이들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폈다. 이 일을 계기로 랄슨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지만, 아이들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드디어 시작한다. 또한 외톨이였던 카라는 친구들과 더불어 ‘진실과 자비가 담긴 좋은 마음을 지닌 신문’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랜드리 뉴스’ 9호에 실린 ‘잃은 것과 얻은 것’이라는 기사가 문제가 되어 징계위원회가 소집된다. 랄슨 선생을 해고시킬 빌미로 신문을 이용하려 든 것이다. 과연 ‘랜드리 뉴스’는 폐간되고 랄슨 선생님은 해고될 수밖에 없을까. 랄슨 선생님은 이 순간에도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지지한다. 어려움을 헤쳐가는 동안 아이들이 언론의 자유와 역할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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