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루카 루카구드룬 멥스 글, 미하엘 쇼버 그림, 김경연 옮김/풀빛 펴냄(2002) 어린이청소년 문학에서 죽음, 폭력, 성, 사랑 같은 소재는 조심스럽다. 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실제로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주디 블룸의 <포에버>는 미국 출간 당시 청소년의 성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학교 폭력을 직설적으로 고발한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콜릿 전쟁>도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고 역시 금서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금지와 억압이 정답은 아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측면을 숨기기보다는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 더 중요하다. 옛이야기와 문학이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다. 독일의 어린이책 작가 구드룬 멥스는 어른들이 터부시하는 주제를 피해가지 않는다. 언니의 죽음을 다룬 <작별 인사>나, 이성 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루카 루카> 같은 동화가 그렇다. 사실 어린이책에서 사랑을 다뤄도 대개는 전반부 정도에서 끝난다. 하지만 멥스는 150쪽 남짓한 동화에서 한 소녀를 관통해간 사랑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보여준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기형도 시인이 말했던가. 멥스는 ‘사랑을 잃고 소녀는 성장한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 파니다. 학급 연극에서 개구리왕자 역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파니는 어린이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한데 뭔가가 일어났다. 공주 역을 맡은 남자아이 루카가 파니에게 절대로 입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입을 맞춰야 개구리가 왕자가 되는데 말이다. 그날 이후 루카는 자꾸 실수를 한다. 파니 역시 루카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꾀병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은 날, 파니는 루카가 자기를 기다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날 루카에게 안부 전화를 받은 후 파니의 몸은 풍선처럼 가벼워졌다.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고, 학교 가는 일이 이렇게 기뻤던 적이 없었다. 이제 파니는 온통 루카 생각뿐이다. 파니와 루카는 몰래 놀이터에서 만난다. 서로 손을 잡고 걷고 이야기를 나눈다. 파니에게 루카는 학교 친구 루카이자 비밀 남자친구 ‘루카 루카’다. ‘루카 루카’가 살짝 파니 얼굴에 손을 댔을 때 파니는 갑자기 자기 옷 속을 개미 수천마리가 간질이는 것처럼 느꼈다. 사랑에 빠진 거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끝이 있듯, 파니의 사랑도 영원히 기쁠 수는 없다.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둘은 잠시 떨어졌다 만났다. 그사이 루카는 달라졌다. 승마 이야기만 하더니 새로 전학 온 남자애와 노느라 파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이내 파니를 잊어버린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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