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
국민행복을 국정철학으로 삼아
“물직과 정신, 문화, 환경 사이
균형 찾으려 정책적으로 노력”
[기조강연 나설 카르마 치팀 전 부탄총행복위원회 장관-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대담]
히말라야의 고요한 왕국 부탄은 2016년 유엔(UN)이 발표한 48개 최빈국 중 하나다. 1인당 소득이 연간 2362달러(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체 인구(75만명)의 90% 이상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도가 높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여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온 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보다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이 더 중요하다’는 국정철학을 정책적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 공공의료가 대표적이다. 소박하고 독특한 문화적 전통에 기초한 막연한 행복감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목표로 행복을 ‘사회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게 ‘행복 부탄’의 핵심이다.
부탄 정부는 정기적으로 국민총행복지수를 조사해 국민의 행복 상태를 점검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경제 발전에 중요한 정책이라도 국민총행복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해왔다. 경제 발전과 정신, 문화, 환경 사이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부탄의 국민총행복 경험은 최근 서구 선진국들의 정책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는 11월23일 2016 아시아미래포럼의 연사로 나서는 카르마 치팀 부탄 인사위원회 위원장은 2007년 국민총행복위원회 장관을 맡아 행복 정책을 추진해왔다.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는 2011년부터 3차례 부탄을 방문해 행복정책을 연구해왔다. 포럼을 앞두고 지난 21일 두 사람이 나눈 전자우편 대담을 지상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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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부탄 전통복장을 입은 청소년들이 `행복은 외부의 물질적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는 경구가 쓰여진 표지석 앞에서 웃고 있다. 박진도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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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타깃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박진도(이하 박) 국민총행복 개념이 부탄 국가 정책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고 있나?
치팀 국민총행복은 물질적 번영과 정신적 풍요로움, 문화적 욕구,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통합적 발전 접근법이다. 행복이 모든 개인의 궁극적 열망이며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게 국가 발전의 목표여야 한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다. 이 개념은 1972년 4대 왕이 처음 제시했고 2008년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면서 공식적인 통치철학이 되었다.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 발전, 생태계 보전·회복, 문화의 보전·증진, 이 세 가지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거버넌스 등 4개의 축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략으로 9개 영역과 33개 지표를 세분화했다. 2008년 국민총행복위원회가 구성돼 이것이 모든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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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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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2015년 제2차 국민총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행복한 사람은 43.4%에 지나지 않는다. 뜻밖이다. ‘불행하다’고 답변한 사람은 10%가 되지 않지만, 이를 포함해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이에 대해 부탄의 한 정책 담당자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높은 수준의 달성 목표를 정했기 때문이고,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관심사”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인데도,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과 문화 및 환경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득도 휴식도 문화도 똑같은 가중치
치팀 지수를 구성하는 9개 영역 간에 중요도 가중치에서 어떤 차이도 없다. 우리는 소득뿐 아니라 휴식과 문화생활 영역도 행복에 필수조건이라는 ‘통합적 관점’을 갖고 있다. 특정 분야를 다른 분야에 종속시키면 발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행복이 약화되기 마련이다. 환경보다 개발을 우선시했던 선진국들은 이미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기 쉽지 않다. 많은 나라가 근대화 과정에서 고유의 문화를 상실하고 정체성 문제에 직면했다. 이는 결국 삶의 질을 하락시킨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식 석상에서 양복을 입듯이 우리는 전통의상을 입는다. 건축물을 지을 때는 전통 파사드 양식을 요구한다. 우리 국민들은 부탄의 문화와 전통이 단순한 관광 볼거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활기차다는 것을 일상에서 자랑스럽게 경험한다.
박 국민들의 행복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건 부탄만의 특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부탄의 행복정책이 유독 다른 점은 무엇인가?
치팀 행복 정책과 관련해 대부분의 다른 나라는 부탄과 같은 통합적 틀을 갖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문화나 심리적 웰빙, 여가활용, 커뮤니티 활력 같은 영역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지디피 증대 목표에 종속돼 있다. 교육도 건강도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되고 문화와 환경도 상품으로 소모된다. 이에 따른 무한경쟁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낳고 정신적 황폐화를 불러온다. 반면 부탄에서 지디피는 국민총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정신적 웰빙을 증진하기 위해 학교 정규수업에 명상과목을 도입했다. 발전에 대한 통합적 접근은 경제 번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좀 더 행복한 노동력이 좀 더 생산적인 노동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총행복 기준 따라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포기
박 부탄은 국가의 모든 정책을 결정할 때 정책영향평가를 거쳐 국민총행복 기준을 통과한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포기했다. 하지만 이런 조처가 부탄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국제사회의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
치팀 정책영향평가 심사는 정부의 모든 정책이 국민총행복에 얼마나 기여하거나 장애가 되는지를 평가하는 데 이용된다. 어떤 정책이 국민총행복 기준을 통과하려면 정책수립 부처와 국민총행복위원회 담당자들로 구성된 심사단으로부터 최소 75%의 긍정적인 점수를 얻어야 한다. 이 심사를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적용한 결과 가입 추진을 중단한 게 사실이다. 물론 지디피에 중점을 둔 개발정책을 추진한다면 가입이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무역기구의 옵서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박 부탄도 점차 개발 과정에 들어서고 개방화하고 있다. 다른 사회처럼 청년층과 기성세대 간의 문화적 갈등이 생겨날 것이다. 도시화·개인화로 공동체 문화가 약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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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치팀 전 부탄총행복위원회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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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팀 2015년 국민총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영역에서는 큰 변화가 관측되지 않았다. 문화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 흐름으로 본다면 세대 간 갈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족이 행복과 화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가족 친화적인 직장은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의 활력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있는 건 사실이다. 소속감, 이웃에 대한 신뢰, 안전 등의 세 지표가 최근 5년간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도시화로 공동체 관계도 약화되고 있다. 공동체 강화를 위해 도시계획을 디자인할 때 사회적 공간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득보다 중요한 건 일과 휴식 안배
박 부탄의 국민총행복 정책 경험을 다른 나라에서도 배우고 있다. 2011년 유엔 총회는, 부탄이 주도하고 68개국이 동참한 특별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행복은 인간의 근본적인 목표이자 보편적인 열망이다. 지디피는 그 본질상 이러한 목표를 반영할 수 없다. 지속가능성을 드높이고, 빈곤을 감축하고, 웰빙과 행복을 증진하려면 보다 포용적이고 공평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역시 최근 들어 삶의 질이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성장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치팀 부탄의 정책에서 얻을 만한 교훈이 있다면, 행복에 중요하지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온 분야, 즉 심리적 웰빙이나 일과 휴식의 균형, 커뮤니티 활력 같은 분야에도 정책적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더욱 필요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부탄은 국민이 더 오랜 노동을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대신에 하루 24시간을 3등분해 일과 여가, 수면을 적절하고 충분히 취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시간 배분이 먼저 이뤄져야 일과 생활의 균형이 잡히고 국민총행복도 가까워질 수 있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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