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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18:40 수정 : 2019.11.24 19:46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모습. 한국방송 제공

가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 열 명을 꼽으라면 망설여지는데, 한 명만 꼽으라면 바로 말할 수 있다. 나만 그럴까? 대중음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개성과 취향이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그 질문에서만큼은 대다수가 같은 대답을 내놓을 거라고 확신한다. 조용필.

조용필이라는 가수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지난번 방탄소년단 특집처럼 몇 회에 걸쳐서 써야 할 텐데, 마침 작년이 그의 데뷔 50돌 되는 해여서 특집 기사와 헌정 방송이 여럿 나온 바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서 보기를. 오늘 나는 그가 섰던 무수히 많은 무대 중에서 딱 하나의 무대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그래도 명색이 음악 칼럼이니 맛보기로 살짝만 음악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겠다.

가요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히트곡이 하나만 있어도 평생 먹고는 살고, 히트곡이 두 곡 있으면 자식까지 먹여 살린단다. 조용필의 히트곡은 몇 곡일까? 1968년에 밴드 활동을 시작해 1979년에 ‘창밖의 여자’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노래를 발표했고 몇 년 전 ‘바운스’까지 수십 곡을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어느 정도의 양인가 하면, 이틀 동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며 히트곡을 불렀는데 단 한 곡도 겹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애창곡은 안 나왔다며 서운해하는 관객들의 후기가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옛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태도의 결과다. 그 덕에 전 세대가 다 그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다. 이를테면 70대 할아버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옛날을 추억하고, 50대 엄마는 ‘모나리자’를 열창하며 소녀 시절로 돌아가고, 20대 아들은 무심하게 ‘바운스’를 선곡하는 진풍경이 가능한 것이다.

연합뉴스

조용필은 장르 섭렵의 1인자이기도 하다. 작정한 듯 모든 장르에 도전했는데 그저 도전에 그치지 않고 정복하고야 말았다. ‘못 찾겠다 꾀꼬리’나 ‘미지의 세계’ 등 록음악은 기본이다. ‘슬픈 베아트리체’ 같은 정통 발라드에서도 절창을 들을 수 있고, ‘단발머리’는 몇 번이나 리메이크된 디스코 명곡이다. ‘대전 블루스’를 위시한 블루스 음악도 잘 불렀고, 민요 또한 조용필의 전공 분야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재즈의 느낌이 묻어 있고, ‘허공’같이 정통 트로트 팬들도 좋아하는 노래도 있다. 일렉트로니카 편곡을 도입한 ‘헬로’나 마룬 파이브를 연상케 하는 ‘바운스’는 내가 알던 조용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었지만 음악적 성취는 정말 대단했다. 음반을 쭉 듣고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난다. 어떤 장르라고 분류하기조차 불가능한, 오직 조용필만이 소화할 수 있는 노래도 많다. 록음악의 악기 구성에 디스코 리듬을 차용하고 전통 가요 창법으로 노래하는 식의. 예를 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노래를 뭐라고 규정할 것인가? 그저 조용필 노래라는 표현 말고는 설명이 안 떠오른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들의 완성도도 대단하지만 조용필이 가장 빛났던 곳은 무대 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솔로 가수였던 적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밴드를 시작해 무려 50년 동안 대부분의 세월을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리듬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그의 밴드는 이름에 걸맞게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가진 뮤지션만이 문을 두드려볼 수 있었다. 수십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거듭하면서 그들은 당대 최고의 공연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늘 새로 설정했다. 최근 10년 정도 동안 무대 영상은 유튜브에서 깨끗한 화질로 직접 감상할 수 있으니 직접 찾아보시길. 지난해만 해도 데뷔 50돌 공연과 북한에서 펼쳤던 ‘우리는 하나’ 공연 등 많은 영상이 있는데 찾아보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 일흔이라는 그의 나이처럼 위대한 탄생의 연주 실력 역시 불가사의의 영역에 있다.

오늘 이 칼럼은 그가 섰던 어느 무대를 이야기하면서 마칠까 한다. 오래전, 한류라는 개념도 없던 때 조용필이 일본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무대에 올라서 일본 가수와 대화를 나누는데 일본 가수가 동해를 일본해라고 하자 바로 말을 끊고 정정한다. 그 바다의 이름은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고.

한국도 아니고 일본이었고 그냥 공연도 아니고 방송 중이었다. 무대를 지켜보던 사람도 거의 다 일본인들. 그러려니 넘어가는 편이 조용필 자신에게 편하고 유리한 상황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자신의 활동에 불이익이 올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굳이 정정을 했다.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유니클로에서는 공짜 히트텍을 사은품으로 뿌렸고 매장에는 줄이 늘어섰다. 그 장면을 보고 ‘불매운동이 끝났네’, ‘자존심도 없는 국민이네’ 하고 탄식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떤지 돌이켜보았다. 올해 유니클로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일본 맥주도 입에 안 댔지만 일본 카레는 몇 번 먹은 적 있다. 그렇다면 내 불매운동은 실패일까?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져야 할 태도가 어때야 할지 가왕 조용필이 일본 방송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일본 방송에 출연하더라도 잘못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지적하는 태도. 공짜 사은품을 얻겠다고 일본 옷가게에 길게 늘어선 줄도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을 맹비난하고 ‘종특’이네 국민성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목소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지소미아 협정 종료를 눈앞에 둔 지금, 가왕의 일본 무대를 다시 떠올려본다. 웃는 얼굴로, 그 아름다운 바다를 우리는 동해라고 부른다고 짚어주던 그 모습을.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피디 · 정치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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