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9 13:57
수정 : 2019.08.11 18:59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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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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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팝음악이 있다. 제시카의 ‘굿바이’, 스틸하트의 ‘쉬스 곤’, 최근 홍대 클럽과 거리를 싹쓸이했던 ‘핸드클랍’등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차트 상위권에 들지도 못한 곡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팝송’의 반열에 올랐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많다. 빌보드 차트를 휩쓸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냥 ‘처음 들어보는 외국 노래’들인 곡들이 많기도 하다.
노래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도 그렇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미국 본토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비하면 ‘굴욕’이라는 표현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 없는 그룹 ‘비치 보이스’다.
그룹 이름에 ‘소년’이 들어가긴 하지만 실제 비치 보이스는 현존하는 최장수 팝그룹이다. 데뷔 연도가 무려 1961년이다. 그때 태어난 사람들도 지금 모두 정년퇴임을 하고 물러나 있는데, 그때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도 음반을 내고 세계 순회공연을 다닌다니. 심지어 3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했단다. 여든이 코앞인 어르신들이 ‘해변의 소년들’이라는 그룹 이름으로 샬랄라 노래를 하고 있다는 얘기. 무려 50년 가까이. 허허. 이게 말이 되나. 청년실업문제 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분들이네.
비치 보이스의 위대함은 세계 최장수 그룹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10년쯤만 활동하고 해체했어도 그들의 족적은 팝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은 기본이고. 데뷔하자마자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들의 음악은 ‘서프 뮤직’으로 불린다. 그게 뭐냐고?
따사로운 햇빛, 새파란 하늘, 고운 백사장과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는 소년 소녀들. 이런 마냥 좋기만 한 것들이 다 녹아있는 음악이 서프 뮤직이다. 그러니 달콤할 수밖에. 비치 보이스의 초기, 그러니까 서프 뮤직에 집중하던 시기는 역사적으로도 평화시대의 절정이었다. 1964년 일어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직전, 그러니까 평화라는 보름달이 이지러지기 직전이었을 때다. 이때 노래들은 설탕을 재료로 설탕을 가미해 설탕 그릇에 담아 낸 음식 같다. 층층이 쌓아올린 보컬 하모니는 밀크 크레페라고 하면 어떨까? ‘서핑 유에스에이’를 필두로 ‘서퍼 걸’, ‘리틀 듀스 쿱’, ‘펀, 펀, 펀’ 등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히트곡들.
평화의 시대는 저물고 미국은 베트남전의 광풍에 휘말려들었다. 비치 보이스 역시 한가로운 서프 음악 시기를 뒤로 하고 변화와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룹으로 변신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은 <펫 사운즈> 음반인데, 요즘에도 종종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꼽히곤 한다. 나보고 꼽으라고 해도 최소 열손가락 안에는 넣어줄 수밖에 없는 대단한 음악적 성과를 이뤄냈다. 비치 보이스 특유의 정교한 화음에 일반적인 악기들은 물론이고, 자전거 종소리, 오래된 오르간, 하프시코드, 플루트, 테레민, 동물의 울음소리들까지 한데 녹여냈다.
무엇이 이 소년들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해변의 낭만만 주구장창 노래하던 소년들이 팝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을 만들게 된 이유는 시대적 분위기 외에도 숙명의 라이벌 비틀즈를 꼽을 수 있다. 비치 보이스가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1964년에 비틀즈가 미국으로 날아왔다. 팝 역사에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사건이다. 방탄소년단이 패러디하기도 했던,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즈가 출연한 그 유명한 무대에서 관객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비치 보이스는 충격과 질투에 사로잡혔다. 영국의 더벅머리 소년들과 미국의 금발머리 소년들과의 라이벌 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최고의 팝그룹으로 추앙받는 비틀즈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비치 보이스에 대한 평가는 억울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어린 친구들은 비치 보이스라는 이름 정도나 들어봤을 거고, 장년층으로 대상을 확장해도 ‘서핑 유에스에이’나 ‘코코모’ 두 곡 외에는 알려진 노래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영미권에서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의 라이벌로 손색이 없다. 리버풀의 귀요미들 비틀즈의 융단폭격에 이어 런던의 불량아들 롤링스톤즈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휘젓고 다닐 때 미국 팝을 대변한 자존심이 비치 보이스다. 재미있는 사실은 비틀즈에 자극을 받아 비치 보이스가 만든 음악이 다시 비틀즈를 자극했고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틀즈의 멤버들도 인정한 적이 있다. 라이벌의 좋은 예로 꼽을 만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비치 보이스는 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을까? 사실 필요 없는 질문일 지도 모른다. 음악이란 예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이니까. 창작을 할 때도 소비가 될 때도 그렇다. 그러니 비치 보이스의 음악이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러개 댈 수 있고 반대의 이유도 그러하다. 다만 이 여름, 대내외적으로 무시무시한 뉴스들만 쏟아져 나오는 요즘 비치 보이스의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특히 초기의 서프 뮤직은 귀를 얼얼하게 마비시킬 정도로 달달하니까. 추천곡은? ‘아이 겟 어라운드’.
눈을 감고 볼륨을 높인다. 좋기만 했던 그 시절, 트럼프도 김정은도 아베도 시진핑도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없던 1960년대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출발!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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