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6 17:51
수정 : 2019.07.28 22:57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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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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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는 방탄소년단(BTS·비티에스)의 성장 과정을 간략히 들여다보았다. 학교 3부작, <화양연화>, <윙스>, <러브유어셀프>로 이어지는 활동을 통해 그들은 팝시장 정상에 우뚝 섰다. 어떤 이들은 의심하고, 또 어떤 이들은 걱정했다. 그들의 인기가 식을까봐. 우리 가요계보다 열 배는 더 버티기 힘든 곳이 미국 시장이니까. 방탄소년단은 오래 쉬지 않고 바로 새 음반을 발표했다. 그리고 주변의 의심과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새 음반의 타이틀은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 무려 카를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소개한 책에서 따온 제목이다. 멤버들이 방시혁 대표의 권유로 이 책을 읽었고 음반의 주제에 영향을 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알려지자 이 어려운 책이 단숨에 인문학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저 제목만 따온 것이 아니다. 인트로 부분의 가사를 보자.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
지난 음반에서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으로 우뚝 선 자신감을 표출했던 방탄소년단은 새 음반에서 그 이면의 존재론적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는 부담을 벗고 소박한 모습으로 팬과 함께하고픈 마음을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그 노래는 지금껏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어떤 노래들보다 편하게 들린다. 안무도 마찬가지.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그들답지 않게 시종일관 살랑살랑 흔들어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 만에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억뷰에 근접했고 초대형 스타디움만 골라서 도는 월드투어를 성사시켰다. 일본과 남미는 물론이고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팝시장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매번 수만장의 티켓을 단숨에 매진시키는 괴력을 과시했다.
여기까지가 방탄소년단이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길의 머지않은 곳에 우리나라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의무가 기다리고 있다.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운 군 면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현재 병역법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병역특례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으로 미리 정해둔 스포츠 분야 국제대회 메달을 따거나, 음악의 경우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국내외 콩쿠르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해야 한다. 무용 분야나 판소리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중음악과 관련한 조항은 아예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을 바꾸거나, 최소한 대통령이나 총리 훈령이라도 있어야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문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이름)는 병역특례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이 없다. 때가 되면 당연히 간다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논의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뭘까?
원칙, 명분, 실리.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때 작동되는 세 가지 기준이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병역특례의 원칙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명분과 실리가 너무나도 크다. 단순히 외화를 벌어들이는 차원을 떠나(물론 그 액수도 상상 초월이긴 하나)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역사상 어떤 운동선수나 예술가도 이렇게 많은 외화를 벌어다 준 적이 없고, 어떤 정치인이나 외교관도 이 정도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인 적이 없다. 수십, 수백억원의 세금을 들여 우리나라를 광고하고 이벤트를 벌이는 것보다 방탄소년단의 활동이 더 효과적이다. 지구 반대편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조국이라며 우리나라에 관광을 오고 우리말과 문화를 알아서 배운다.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마법처럼 펼쳐지는 우리말 떼창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음악은 가장 빨리 정서를 전달한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방탄소년단은 건국 이래 가장 빨리 가장 널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지구촌 곳곳에 알린 문화대사다. 김구 선생께서 생전에 그토록 원하셨던 문화강국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방탄소년단이 군 면제를 받는 것은 별도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원칙과 명분과 실리. 세 가지 기준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거다.
마지막으로 20년 후 탄이들의 모습을 예언하고자 한다. 나의 ‘최애’(가장 애정하는) 멤버 슈가는 힙합 전문 레이블을 만들어 한국 힙합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맏형 진은 코믹 연기를 마다 않는 꽃중년 배우로 활동 중이며 예능에서도 대활약하고 있다. 여전히 별명은 ‘월드와이드 핸섬.’ 뷔는 솔로 가수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두 번이나 차지했다. 지민과 제이홉은 듀오를 결성해 활동 중인데 종종 다른 멤버들도 참여한다. 정국은 연기 활동과 가수 활동을 동시에 하는데 40대 중반에도 복근이 선명하다. 김남준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선거 캠프를 이재익이라는 작자가 맡았다나 뭐라나.
서로 다른 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지만 매년 6월이면 만사 제쳐놓고 함께 모여 활동한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여전히 방탄소년단의 이름으로. 그리고 아미가 변함없이 그들 곁을 지키고 있다. 보라해 방탄.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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