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4 14:55
수정 : 2019.05.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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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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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 엘턴 존의 어린 시절과 전성기까지 살펴보았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7장의 음반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놓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던 그가 성공의 정점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힌 것이다. 그 뒤 엘턴 존의 인기는 급강하했다. 새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혹평이 잇따랐다. 이렇다 할 히트곡도 내놓지 못했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새 노래를 작곡하고 순회공연을 이어갔다.
그는 1984년에 독일의 사운드 엔지니어 레나테 블라우엘와 결혼했다. 아, 이분은 여성이다.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기의 하강 속도 역시 더욱 빨라져 혹독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사생활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면서 이미지가 추락했고 약물과 알코올 중독도 심해지면서 결국 미국 시카고의 갱생시설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즈음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바닥을 찍었다고 하겠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알겠지만 프레디 머큐리 역시 처참하게 바닥을 친 시절이 있다. 다만, 프레디가 에이즈로 처절하게 산화한 것과 달리 엘턴 존은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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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은 부활의 해였다. 지금까지의 가수 생활을 정리한 베스트 음반이 엄청난 인기를 거두며 재기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퀸이나 방탄소년단(BTS) 등등 세계 최고의 가수들만 설 수 있는 웸블리 아레나에서는 예전 히트곡인 ‘돈트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를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불렀는데 이 버전이 차트 역주행을 하며 미국과 영국 차트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해버렸다. 내친김에 그는 모발 이식도 하고(이 시절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젊은 이미지로 변신한 뒤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다시 공연도 활발하게 다니고 새 음반도 매년 꼬박꼬박 내놓았다. 이름을 다 열거하기도 힘든 팝스타들과 듀엣도 많이 했다.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하고 부른 노래도 있다. 그리고 1994년에 그 유명한 영화 <라이온 킹>의 음악을 맡아 수천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두번째 전성기의 정점을 맞이한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도 거리마다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이었고 라디오만 틀면 그 노래가 나왔다. ‘아재와 언니’들은 기억할걸? 이건 뭐 사랑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슬픈 일도 많았다. 프레디 머큐리에 이어 또 다른 절친들이 연이어 엘턴 존의 곁을 떠났다.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가 총격으로 사망했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던 엘턴 존에게 다이애나의 유족은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평소 다이애나가 가장 좋아하던 엘턴 존의 노래는 ‘캔들 인 더 윈드’였는데, 원래 마릴린 먼로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엘턴 존은 친구 다이애나를 그리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불렀고 이 장면은 전세계로 생중계되어 10억명의 사람들이 시청했다.
엘턴 존은 장례식에서 부른 버전을 싱글 음반으로 발매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차트 역주행의 전설이자 팝음악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에서는 아예 차트 1위로 데뷔했고 미국에서도 차트를 휩쓸며 1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다른 나라에서도 기록적으로 팔린 끝에 결국 캐럴인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노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당연히 떼돈을 벌었는데 엘턴 존은 엄청난 액수의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아마 이 노래 대신 다이애나를 살릴 수 있다면, 엘턴 존은 그렇게 할 것 같다.
엘턴 존의 일생을 보고 있자면 고리타분한 아포리즘 하나가 떠오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엘턴 존은 가장 강한 가수이자 가장 강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프레디 머큐리, 베르사체, 다이애나, 마이클 잭슨, 조지 마이클, 파바로티 등 친구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병에도 걸리지 않고 사고도 당하지 않고 술도 마약도 극복하고 자살도 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도 나이 70이 넘어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6년에는 정규 32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친구 프레디의 유언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가 아주 간략하게 살펴본 엘턴 존의 일생이다. 그리고 영화 <로켓맨>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스크린에 담아낼 것이다. <로켓맨>도 <보헤미안 랩소디>만큼 흥행할 것 같냐고? 영화 흥행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과를 보고 나서야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이유를 끼워 맞추는 것이 나를 비롯한 평론가, 칼럼니스트들이 하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보헤미안 랩소디>보다는 훨씬 더 뮤지컬에 가까운, 이를 테면 <라라랜드>나 <위대한 쇼맨> 유의 영화라고 한다. 또 <보헤미안 랩소디> 전에는 국내에서 무명 배우나 다름없었던 인지도의 라미 말렉이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것과 달리 <킹스맨>으로 스타덤에 오른 태런 에저턴이 엘턴 존 역을 맡았다. 무모하게 관객수 예측을 하자면 280만 본다.
백문이 불여일청. 지난번과 이번 화에 언급된 노래들을 쭉 들어보시길. 피아노 발라드와 로큰롤을 넘나드는 20세기 팝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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