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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7 04:59 수정 : 2018.10.27 09:46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겨레> 자료사진
한물 간 것들은 우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벌꿀 아이스크림, 인라인 스케이트, 셔플 댄스 등등. 헤비메탈도 그렇다. 요즘 세상에 누가 메탈을 하냐?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시나위가 한다. 그렇다. 우리나라 헤비메탈의 시조새라고 할 법한 이 밴드는 함께 활동하던 수많은 밴드들이 사라지고 황무지처럼 변해버린 메탈 씬에서 아직도 활동 중이다. 시나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많은 뮤지션들의 이름이 등장할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틈틈이 그들의 음악을 찾아듣기를 권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 한 토막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내가 시나위를 처음 만난 곳은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뀐 광화문 근처의 중고 레코드 가게였다. 멤버 네 명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엘피(LP) 재킷에는 <시나위 4>라는 음반 타이틀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시나위 4집의 라인업은 보컬에 김종서, 드럼에 김민기, 베이스에 서태지, 기타에 신대철. 음반을 듣고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와우, 우리나라에도 헤비메탈을 제대로 하는 밴드가 있었네! 내가 돈을 주고 산 첫 가요 음반이기도 했다.

시나위의 시작은 무려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이었던 신대철이 다른 멤버들을 영입해 결성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20대 성인이었지만 유일한 고딩 신대철이 리더였다는 것. 한 살만 많아도 꼼짝없이 형님이었던 대한민국의 그 시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신대철의 압도적인 실력 덕분이었겠으나 그가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이었다는 배경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신대철은 성에 차는 멤버들을 구할 때까지 계속 멤버 교체를 단행한다. 특히 보컬리스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노래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김종서도 오디션을 보고 함께 공연까지 했으나 첫 공연 후 아웃. 그리고 자리를 꿰찬 사람이 바로 임재범이다. 그와 함께 드디어 첫 음반 <헤비메탈 시나위>를 녹음한다. 음반 타이틀에서부터 정체성이 확실하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등등 지금까지도 불리는 노래들이 수록된 이 음반은 심심하면 새로 집계하는 한국 가요 100대 명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임재범은 음반 한 장만 녹음하고 시나위를 떠난다. 혹은 쫓겨난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여야 하는데, 이토록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두 아티스트가 한 그룹에서 사이좋게 오래오래 지내기란 어려운 법. 임재범 만이 아니었다. 신대철은 본인을 제외한 멤버들을 모두 교체하여 2집 음반을 준비한다. 아직 애송이라며 쫓아냈던 김종서를 다시 불러 마이크를 쥐어주고(실제 나이는 신대철이 더 어림), 베이스에는 강기영(달파란)을 세우고, 천재 드러머 김민기까지 영입한다.

멤버들도 좋았고 음반의 완성도도 뛰어났다. 두 번째 음반이 음악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데뷔 음반의 임재범 노래도 대단했지만, 끝도 없이 올라가는 김종서의 고음은 그 전에 우리가 그토록 흠모하던 ‘미쿡 형아’들의 목소리였다. ‘새가 되어 가리’ 같은 노래는 지금 들어도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그래, 헤비메탈은 이래야지! 이 노래는 훗날 김종서가 솔로로 데뷔한 뒤에도 여러 무대에서 다시 불렸다. 2007년에 발매한 음반에 실린 버전을 최고로 꼽는다. 기분이 답답할 때 꼭 들어보시길.

‘소포모어 징크스’(데뷔 첫해 대성공을 거둔 선수나 가수가 다음 해에 부진한 현상)는 극복했으나 3집 음반에서 휘청했다. 의견 차이로 그룹을 나간 김종서 대신 ‘작은 하늘’ 출신의 보컬 김성헌을 영입했으나 영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김종서를 부르고, 거기 얹어서 17살의 소년 서태지에게 베이스를 맡긴 음반이 앞에서 말한 4집이다. 그 유명한 ‘겨울비’의 원래 버전이 실려 있다. 김종서의 솔로 버전보다 훨씬 더 애절하다. 김종서의 겨울비가 카페 안에서 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라면 이 음반의 겨울비는 직접 비를 맞으며 흠뻑 젖는 느낌이다. 시나위 노래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 ‘페어웰 투 마이 러브’도 이 음반에 있다. 흥분과 불안이 훠궈의 백탕 홍탕처럼 함께 끓었던 10대의 어느 겨울 내내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자친구도 없었으면서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떠올리며 눈물지었지. 제발 가지 마 엉엉. 이 글을 읽고 있는 아재 아짐 독자들 중에서도 비슷한 추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 꽤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시나위는 파죽지세로 록계를 평정해왔다. 그런데 생각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김종서와 서태지가 눈이 맞은 것이다. 이것들이! 지금까지도 절친인 둘은 손을 잡고 시나위를 탈퇴한 뒤 각자의 길을 간다. 김종서는 가요 발라드를 내세운 솔로 활동을 준비하고, 서태지는 아이들을 모아 지구정복을 꿈꾼다. 보컬과 베이스를 한 번에 잃은 신대철은 일단 시나위의 날개를 접는다. 잠시.

여기까지가 시나위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서 그룹의 생명이 끝났다고 해도 가요의 역사에서 시나위가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신대철 본인은 물론이고, 임재범, 김종서, 김민기, 서태지, 달파란 등등 이후 우리 가요계의 거물이 되는 뮤지션들을 배출한 사관학교의 의미로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후 시나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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