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3 05:00
수정 : 2018.10.13 11:27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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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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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해서 은퇴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다루었다. 무대를 국내로 한정한다면, 그들은 방탄소년단(BTS)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팀이었다.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 등 평생을 노래했고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 원로 가수들이 이룬 업적과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에 무수히 쏟아져 나온 아이돌 가수들 중에서도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팀들이 많다. 에이치오티(HOT), 젝스키스, 지오디, 소녀시대, 빅뱅 등.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획되어 나온 아이돌이 아닌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서태지와 아이들이 점령했던 고지에는 혁명의 깃발이 꽃혀 있었다.
출발부터 그랬다. 학벌이 인장과도 같았던 그 시절, 멤버들이 모두 고졸에 서태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한 학력이 전부였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자면 낙오자 중에서 낙오자였던 셈. 한 살만 어려도 형 누나 깍듯하게 존칭을 붙여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서태지가 리더였다는 점도 파격. 그들의 데뷔 음반이 기성세대 평론가들에게 최하점을 받은 이유는 그만큼 혁명적이었다는 뜻. 처연한 멜로디의 가요 발라드나 뿅뿅거리는 디스코, 구성진 트로트가 평화롭게 분할통치를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가요계에 랩이라는 무기를 들고 와서 그야말로 학살을 시켜버린 음반이었다. 2집에서는 국악과 테크노 비트를 도입하더니 3집에서는 한국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가사로 기성세대와 확실한 각을 세웠다. 4집은 더 했다. 갱스터 랩이라니. 거기에 한 술 더 떠, 신성불가침처럼 여겨졌던 국가 심의기관을 제대로 들이받았다. 니들이 뭔데 우리 음악이 불온하다고 판단해? 그리고 서태지는 이겼다.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자의 모습으로 그는 떠났다. 컴백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지면의 제약이 있으니 생략하겠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필자를 이른바 ‘서태지 빠’로 생각하겠지. 그러나 미리 밝혔듯 나는 서태지의 팬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를 폄하해왔던 사람이다. 이를 테면, 한참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말한 적도 있었다. 서태지는 창작자나 가수로서는 형편없고, 다만 팝의 최신 유행을 제때 갖고 와서 포장하는 재주가 좋았다고. 1집에서 선보인 멜로딕한 랩이라는 것도 그 즈음 미국에서 각광받던 장르였다. ‘난 알아요’는 밀리 바닐리의 히트곡 ‘걸 유 노우 잇츠 트루’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하필 제목도 ‘난 알아요’, ‘그녀는 알아요’라니. 그러나 표절 시비가 제대로 불붙은 시점은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고 나서였다. 그들이 활동할 당시는 엠피쓰리도 유튜브도 없었던 시대였으니. 지금 누가 나에게 ‘난 알아요’가 표절이라고 물어보면 나는 그렇다고 하겠다. 이 정도면 표절이다. 한 번씩들 들어보고 판단하시길.
표절 시비는 계속되었다. ‘하여가’에서는 헤비메탈 그룹 테스타먼트의 기타리프를 그대로 갖다 썼고, 4집 음반을 발표한 뒤에는 싸이프러스 힐, 비스티 보이즈 등의 아티스트들 이름도 거론되었다. 심지어 컴백 후로도 표절 논란이 이어지는데 몇 년 전에 발표한 노래 ‘소격동’도 마찬가지. 이에 대한 서태지의 입장은 어떨까? 참고는 했으나 베끼지는 않았단다. 지난번에도 이 칼럼에서 말한 적 있지만 표절의 판단은 기계적일 수 없다. 듣는 이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나는 서태지의 노래들 중에서 ‘난 알아요’는 표절, ‘하여가’는 무단도용, 나머지는 적극적인 레퍼런스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서태지는 그저 팝음악 따라쟁이에 불과한가? 그건 너무하다. 따라했다는 표현보다는 잘 가져와 썼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것도 무척이나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표절 시비가 전혀 없는 서태지만의 독창적인 창작물도 차고 넘친다. 오히려 발라드 성향의 노래들에서 서태지의 독특한 감성은 빛난다. 어른이 되지 못한, 혹은 되기 싫은 소년의 목소리를 그만큼 잘 담아낸 아티스트는 없다. 또 메시지를 노래 안에 불어넣는 능력 역시 탁월했다. 은퇴 직전까지, 그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고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야 대중이 열광할지 직관적으로 알았음이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서태지를 우리 가요사의 문익점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문익점이 위인전기에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목화씨를 슬쩍 훔쳐왔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마지막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서태지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그는 겨우 10대의 나이에 당시 최고의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자리를 꿰찬 소년이었다. 베이스는 리듬과 멜로디를 동시에 아우르는 악기다. 음악을 아주 많이 듣지 않는 사람들은 노래 속에서 베이스 소리를 구분해내기 쉽지 않은데 그만큼 베이스 연주자는 곡에 깊이 묻혀있어야 한다. 곡 구성, 그러니까 다른 악기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 게다가 시나위에서 활동하면서 온 몸으로 흡수한 록음악의 자양분 역시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큰 힘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다음 칼럼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자존심 시나위.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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