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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0 15:27 수정 : 2017.03.10 21:11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기르고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두르고 현란한 연주 실력을 뽐내던 로커들을 티브이(TV)나 잡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비메탈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만 해도 헤비메탈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보름달이 하루를 못 버티듯, 차오를대로 차오른 헤비메탈의 시대는 고작 몇 년을 못 버티고 끝났다.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축포와도 같은 음반이 너바나의 <네버마인드>(Nevermind)였다. 지금 40대 전후의 아재들 중에서 너바나라는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 너바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싶을 텐데, 틀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린데이(Green Day)다.

그린데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당시 록신(Rock Scene)을 조금 더 살펴봐야 한다. 헤비메탈의 씨를 말린 정복자들은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아무렇게나 내지르고 중얼거리는 창법, 우울한 가사와 멜로디, 심지어 음반 재킷마저도 칙칙했던 로커들이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왕정을 끝내고 시민혁명을 이룩한 혁명가들처럼, 그들은 철저하게 ‘진짜 삶’에 집중했다. 인간이란 숙명적으로 외롭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괴로워하고 인생은 결국 구질구질할 수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음악. 흔히 ‘얼터너티브’, ‘그런지 록’이라고 불리던 음악이 지구촌을 휩쓸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터너티브 록밴드들이 득세하던 그 시절, 촐싹거리거나 생각없이 내달리는 음악을 하던 밴드들도 있었는데 평론가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은 ‘네오 펑크’(Neo-Punk)였다. 1970년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클래시(Clash)를 필두로 유럽을 휩쓸었던 펑크록의 1990년대 버전이라는 뜻이었다. 그린데이는 이런 복잡한 음악적 배경 속에서, 네오펑크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7년에 빌리 조 암스트롱을 중심으로 동갑내기 친구 둘이 모여 결성된 3인조 밴드. 벌써 활동 30년차 노장밴드가 되었다. 데뷔초기에는 명랑한 멜로디에 경쾌한 연주를 덧입힌 달달한 음악으로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초기 음반들에서 그린데이가 천착했던 주제는 세기말의 무기력한 젊음이었다. 권태, 자기비하 등의 가사가 주류를 이루며 사회적인 메시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나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그냥 농땡이 치며 건들거리겠다는 식의 명랑함 그 자체. 커리어 전반기의 최고 히트작인 <두키>(Dookie) 음반에는 심각한 노래가 정말 단 한 곡도 없다.

평생 바보 같은, 그러나 듣기에는 너무 좋은 노래만 발표할 줄 알았던 그린데이는 세기가 바뀔 즈음 뭔가 애매한 분위기로 변화했다. 그들의 음악에 맞춰 팔짝팔짝 뛰며 놀던 팬들이 많이 떨어져나가면서 이제 해체의 수순을 밟나보다 싶었다. 그래. 할 만큼 했지. 헤비메탈의 시대를 종식시킨 너바나도, 그 쟁쟁하던 얼터너티브 밴드들도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발랄한 네오펑크 밴드치고 오래 버텼다 싶었다. 나 역시 청춘이 끝나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코앞에 닥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의 뻘짓이 한창이던 2004년, 그린데이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난데없이 수류탄을 움켜진 손을 떡 하니 재킷에 그려놓은 음반의 타이틀은 ‘바보 같은 미국인’(American Idiot). 음반을 들은 이들은 모두 경악했다. 예전의 그린데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저항과 혁명의 에너지로 똘똘 뭉친 진짜배기 펑크가 들어있었으니. 메이저 데뷔 음반인 <두키>와 비교해서 들으면 도저히 같은 밴드의 음반이라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변화였다.

거의 모든 평론가들이 그해 최고의 음반으로 꼽은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현재진행형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다고 그 이후에 발표한 음반들이 별로였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전작의 시대정신과 음악성을 고스란히 이어간 다음 음반, 그리고 디지털 싱글이라는 이름으로 한 곡씩 야금야금 노래를 발표하는 세태를 질타하듯 무려 세 장짜리 정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심지어 ‘우리가 너무 심각했지?’라고 말하듯, 명랑 쾌활 로맨틱한 초기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서. 작년에서 ‘혁명의 라디오’(Revolution Radio)라는 새 음반을 발표했다. 이제 그린데이는 네오펑크밴드도, 그냥 펑크밴드도 아니다. 레드제플린이나 퀸, 유투가 그랬듯 그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저항과 혁명의 에너지가 가득 찬 세계다. 그린데이의 엉뚱한 시작을 목도한 우리 아재들도, 세계 최고의 록스타로 이들을 처음 만났을 지금의 젊은이들도 이 세계 안에서는 동등한 시민이다.

지금 탄핵 인용 뉴스를 들으면서 글을 다듬고 있다. 구역질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지금, 그린데이의 음악을 독자님들께 추천한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루저들을 혁명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아메리칸 이디엇’ 첫 가사를 인용하면서.

나는 바보 같은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아.”

바보 같은 한국인이 되지 말자. 다시는.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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