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박상영 지음/창비(2019) “잘못을 인정하고 조건 없이 사과한다.” “나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상대의 마음에 공감한다.”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증거를 보여준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개인이나 집단이 공개적으로 ‘~라면’, ‘유감’이라는 말을 섞어 사과를 할 때마다 회자되는 사과 매뉴얼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인데, 이런 매뉴얼이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과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고,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상대의 상처나 피해를 헤아리지 않으며, 그래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재희’에서 이성애자 ‘재희’는 동성애자 ‘영’에게 두 번 미안하다고 말한다. 한 번은 남자친구에게 동거하는 친구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 걸 들켰을 때, 그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이므로 여자와 다를 바 없다고 변명한 것에 대하여. 두 번째는 결혼식 사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가 신랑 측의 반대로 부탁을 철회했을 때. 어떤 성(性)의 상대를 좋아하든 ‘게이로 사는 것도 힘들고, 여자로 사는 것도 힘들어서’ 규합하고 분투했던 그들의 우정을 남자친구의 오해를 풀기 위해 통념적인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성애 중심의 결혼식에서 그들의 우정이 어떤 식으로도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상황이란, 어쩌면 재희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재희는 결혼을 선택했고, 그래서 사과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영’은 두 번 사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영’과 계속 만나왔던 ‘형’의 컴퓨터에서 동성애를 ‘질병’이나 ‘징후’로 취급하는 온갖 문서를 발견했을 때. 또 한 번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새삼스럽게 자식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엄마에게, 남자와 키스하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한사코 자신이 아는 정상성을 강요했던 엄마에게. “본심이 아니었”고,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사과해야 마땅한 일이다. 두 편의 소설에 실린 두 번씩의 사과를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사과를 받고 싶었다. 숱한 비정상과 이탈을 규정하면서 겨우 인정되는 안정적 삶에 관하여, 그 무지와 무감각이 저지르는 무례에 대하여 더 많은 사과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숱한 ‘다름’을 하나의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삶의 그물 안에 우리가 살고 있으므로, 내가 입힌 상처와 피해를 다 알 수 없고 재발을 어떻게 방지할지도 아직 모르니까, 일단 더 많은 사과와 더 좋은 사과를 연습해야 한다. 매일 다른 남자와 자고, 정신없이 취하고, 함부로 사랑에 빠졌다 어김없이 배신당하는 천진난잡한 해프닝과 유머의 주인공들이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듯했고, 나는 또 잠시 미안한 마음이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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