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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9 05:59 수정 : 2019.08.09 20:45

비행운
김애란/문학과지성사(2012)

김애란의 <비행운>을 오랜만에 꺼내든 것은 최근 참여하게 된 북토크 때문이다. 여성청년이나 소녀들 등, 문학 속 여성 형상을 세부적으로 거론하려는 주제의 북토크에 붙인 제목이 하필이면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였던 것이다. 트위터 상에서 이 제목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기보다는 공격적이었)고,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기분으로 좀 당황스러웠다.

북토크의 제목은 <비행운>에 수록된 ‘서른’에서 따 왔고, 원문은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소설 속 화자인 수인이 이 대사를 혼자 중얼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과 취업난에 시달리던 중 피라미드 업체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겨우 빠져 나온 수인에게, 세상은 온통 절망이었고 그런 세상을 살며 수인은 ‘겨우 내가’를 매일 확인할 수밖에 없다. 수인은 아르바이트로 보습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의 제자를 그곳에 소개하고 업체의 합숙소를 빠져나왔다. 제자 혜미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뻔히 알면서도 무너진 자신의 삶을 추스르기에 바빴던 수인은 혜미의 연락을 계속 피했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곤란을 모른 척해야 하는, 아니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친밀한 누군가조차도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깔고서야 겨우 자기의 삶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겨우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 ‘겨우 나’는 자신의 안녕이 사실은 타인의 불행과 맞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기 윤리이자, 개별의 삶을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비관적 응시이기도 하다.

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민음사(2019)

<비행운>의 뒤를 이어 최근 발표된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드림팀’에서 선화는 자신을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의 태도로 대하는 상사 임팀장을 만난다. 인생에서 처음 만난 상사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배운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고, ‘겨우 나’에 급급하는 태도였다. “어디 가서 잘할 사람도 아니고”라며 선화의 이직을 축하하지 않는 임팀장은 ‘겨우 나’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점유하는 한 줌의 우위를 선화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지방 출신으로 임용고시에 세 번이나 실패하고 고시원에 기거하며 직장을 다니던 선화의 삶이 ‘겨우’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화는 자신의 삶을 결코 ‘겨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자라서 절대로 겨우 너가 되지 않겠어’라는 적의는 거기에서 나온다.

그러고 보면 북토크 제목에 대한 공격적 반응에 당황할 일만은 아니다. ‘겨우 나’에 대한 ‘성찰’만으로는 지금 여기의 삶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겨우 너’에 대한 적의를 통해 알게 된다. 문학사가 항상 문학의 고유한 미덕으로 거론해 왔던 ‘성찰하는 윤리적 주체’의 어떤 맹점을 이 적의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너든 나든 누구든 ‘겨우 누군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적의는 생산적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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