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0.25 20:08 수정 : 2018.10.25 20:30

[책과 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 지음/큐큐(2018)

둘이 같이 프리랜서
윤이나, 황효진 지음/헤이메이트(2018)

후배 평론가로부터 카카오톡 메세지가 왔다. “이런 책을 펀딩으로 기획중이래요. 관심 가져 주세요.”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만든 퀴어 소설집. 퀴어 소설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된 요즘이지만,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이 쓴 퀴어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면 분명 재미있을 거였다. 읽고 싶었다. 좋은 기획이지만 펀딩 성사가 불투명하다고 하니 책을 읽으려면 내가 펀딩을 해야 했다. 그렇게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love is love’라는 문구의 작고 동그란 배지와 함께 내게로 왔다.

얼마 후, 후배 작가가 동료와 함께 작은 책을 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두 프리랜서의 생존실험 에세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20년 넘게 자의반 타의반 프리랜서로 살아온 선배로서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즐겨찾기한 미디어를 통해 만난 작가들이 쓴 책을 읽고 싶었다. 역시 읽으려면 펀딩을 해야 한다. 두 번째이니 조금 더 적극적이 된다. 펀딩이 성사되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며 가끔 텀블벅에 들어가서 펀딩 금액이 얼마나 모였나 확인을 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를 둘러보다 덜컥 세 번째 펀딩을 질렀다. 이번에는 뜬금없이 스타킹이다. 평균보다 키가 조금 큰 편이고 하체비만이라서 몸에 맞는 스타킹을 찾기가 힘들다. 대체로 스타킹이란 불편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라며 불친절하게 생산되는 상품이기도 했다. 체형에 맞게 길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시도해 보아야 한다.

진작에 도착한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와 마침 오늘 도착한 <둘이 함께 프리랜서>는 예상과 조금 달랐지만, 달라서 더 좋았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알려진 고전 소설을 퀴어의 이야기로 다시 썼다. ‘퀴어’의 ‘다름’보다는 그것이 한결같이 ‘사랑’이어서 거리낌없이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은 익숙한 고전을 통과하여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둘이 함께 프리랜서>는 그저 ‘프리랜서’로 ‘생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감과 불안에 단련된 근육으로, 남성 스피커로 구축된 자격심사에 적응하지 않고, 누군가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들은 페미니스트 콘텐츠의 욕망을 자극한다. 아니, 에세이라면서 왜 이렇게 기승전결은 뚜렷하고, 게다가 반전까지 있는 거지, 하는 기분이었다.

사랑이든 일이든 스타킹이든 정해진 틀이 우리를 불편하고 머뭇거리게 한다면, 굳이 그 틀 안에 옹색하게 머무를 이유가 없다. 독자는 자신들이 읽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고, 작가는 그런 독자들과 만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아직 여기에 없는 이야기를 찾아 독자들은 기꺼이 펀딩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며 작가와 함께 다른 틀을 만든다. 문학 잡지와 작가의 단행본과 낭독회가, 교보와 예스24와 굿즈가 주는 문학의 기쁨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니까 문학이든 스타킹이든 판도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뒤늦게 실감했지만, 사실 오래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문학은 늘 움직이고 있었다. 펀딩하길 정말 잘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서영인의 책탐책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