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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9 19:52 수정 : 2017.11.09 20:40

[서영인의 책탐책틈]
수인 1, 2/황석영 지음/문학동네(2017)

황석영의 자전(自傳)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창 활동하고 있는 현역작가가 웬 자전? 싶기도 했고, ‘그의 삶이 곧 역사’라는 라디오 광고가 좀 거북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월남과 방북, 망명과 투옥,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겪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의 일대기로 집중되는 ‘자전’의 형식이란 좀 부담스러웠다. 말하자면 개인의 진솔한 고백으로 읽기에 그는 너무 유명한 작가였고, 역사의 기록으로 읽기에는 현재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매일매일 열탕지옥처럼 들끓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버겁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현실의 압도적 힘을 좀 더 견뎌야 하겠기에, 기억의 방식으로 권장되는 역사가 그리 달갑지 않았을 수도. 여기까지는 나의 선입견.

그랬거나 말거나, 일단 읽고 볼 일이다. ‘개인의 일대기’라는 선입견은 양방향으로 깨진다. 자전=일대기적 구성의 선입견을 깨고 <수인>은 방북 직전과 방북, 그리고 수감까지를 앞세워 과거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방북을 중심으로 1985년에서 방북 후 귀국한 1993년까지가 먼저 제시된 후 서사는 1947년부터 시작되는 유년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과거의 시간을 기록하는 일대기의 장 사이에 6개의 감옥의 장이 삽입됨으로써 일대기적 연속성을 거부하고 ‘수인(갇힌 자)’이라는 은유를 서사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로 확장시킨다. 한편, 놀랄 만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된 사건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1인칭’일 수밖에 없는 ‘자전’의 한계를 돌파하면서 ‘개인’의 것일 수 없는 역사의 무게를 증명한다. 한국 전쟁이든 베트남 전쟁이든, 방북이든 광주이든 우리는 그 사건들을 황석영 개인의 행적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각각의 삶들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인>은 자전(自傳)이면서 열전(列傳)이며, 기억이되 회상이 아닌 기록이 된다.

자전의 서사는 1998년 그가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마감되고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에필로그에서 자전의 주인공은 촛불의 현장에 서 있다. 자전에서 누락된 이 20년의 공백을 최대한 서늘하고 서먹하게 기억해 두고자 한다. 방북의 앞뒤를 서사의 첫머리에 배치하면서, 그리고 출소의 시점으로 서사를 마무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전은 방북을 중심에 두고 원환을 그리게 된다. ‘분단과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로 서사의 집중력은 강화되지만, 그만큼 미래로 열릴 시간의 향방은 자유롭지 못하다. 촛불은 에필로그로 덧붙여졌으니 아직 서사로 귀속되지 못한 미정(未定)의 역사이다. 자전에 기록되지 못한 현재의 시간들이 그 미정의 역사를 채우는 디테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인>이 열전이었듯이, 모두의 것이면서 각자의 것인 각각의 민주주의, 각각의 자유가 그 공백의 시간 속에 서늘하고 서먹하게 남겨져 있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역사에 압도되어 현재를 망각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이름으로 지금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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