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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3 18:57 수정 : 2017.08.03 19:08

서영인의 책탐책틈

브로드컬리, 로컬숍 연구 잡지 03호(2017)

얼마 전 동네에 대형서점이 문을 열었다. 산책 겸 들르기도 하고 갑자기 필요한 책이 있을 때 부랴부랴 찾기도 한다. 새로 나온 책을 훑어보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는 일은 서점에 갈 때마다 꼭 하는 일이다. 목록에 들어 있는 책 제목은 바뀌지만 그 책들이 놓여 있는 서가의 인상은 대략 비슷비슷하다. 시내 어떤 대형서점에 가더라도 대체로 같은 목록의 범주들.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은 그들의 기호가 수렴되어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좋아할 만한 책들의 테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대형서점에서는 당장 필요한 책이 아니면 뭔가를 사들고 오는 일이 드물다.

집 앞 골목에 작은 서점이 생긴 지 1년이 넘었다. 외출할 때마다 기웃거리면서도 좀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지지가 않는다. 너무 작은 공간이라 뭐든 사들고 나와야 할 것 같고, 주인장과 얼굴이 마주치는 것이 좀 계면쩍기도 하다. 기웃거리기만 하는 주제에 오지랖 넓은 호기심은 충만하다. 처음 보는 저 책들은 누가 다 만드는 걸까. 팔리기는 하는 걸까. 궁금한 사람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맘먹고 들어간 날에 처음 보는 잡지를 샀다. 로컬숍을 연구하는 잡지라는데 동네 서점 주인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설마 한권도 안 팔리겠나.” “서점의 재정 상황은?” “밥값 정도는 번다. 고양이 사료도 살 수 있다.” 비닐 포장을 뜯고 읽은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득템이다.

사거리를 가로질러 조금만 가면 대형서점이라기에는 소박하고 작은 서점이라기에는 너무 큰 애매한 규모의 서점이 있다. 중소형 서점이랄까. 베스트셀러 목록은 없어도 화제의 책도 있고, 인문학, 소설, 비소설 코너도 있고 참고서, 아동도서 서가도 갖추어져 있다. 작은 출판사의 책이나 청년을 위한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에 자주 머물러 기웃거린다. 미처 몰랐던 책들이 가득하다. 산책 삼아 들른 것인데, 정신 차려 보면 이 책 저 책 한 꾸러미를 모아 들고 계산하고 있다. 충동구매다. 요리도 안 하면서 ‘야채 요리 레시피’는 왜 뒤적이는지, 월급 없는 방학을 걱정하는 처지에 ‘일하지 않을 권리’ 같은 책은 또 왜 탐내는 것인지.

주로 한가하거나 일하기 싫을 때, 동네 서점을 순례한다. 어김없이 평소의 구매 목록에 들여 놓아 본 적 없던, 처음 보는 책들을 사들고 나오게 된다. 도서관에서도 대형서점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책들, 지금 사지 않으면 서가에서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난다. 책이 하나의 상품이라면 나는 서가에 진열된 책을 통해 내 욕망을 읽는다. 시장이 정해준 한계에 골몰하느라 돌보지 않았던 욕망을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물론 사는 것과 읽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책으로 꾸며진 서가가 하나의 세계라면 나는 예정에 없던 세계의 목록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다른 인간이 된다. “소규모 서점 수 증가 추세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서점 수는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 “소규모 서점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우려에는 동의하나?”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걱정하나.”(<브로드컬리, 로컬숍 연구 잡지>, 03호)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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