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민음사(2016)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이라서, 새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해 볼 요량으로 이 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통령의 자서전이나, 대통령의 인터뷰가 실린 <타임> 아시아판과 함께 <82년생 김지영>이 이른바 문템으로 등극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82년생 김지영>은 화제의 책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이 책이 여성 독자들에게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지만, 꽤 오랫동안 이 책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 말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무언가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왜 그랬을까. 너무 쉽게 공감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을 ‘71년생 서영인’으로 바꿔 놓아도 소설의 줄거리는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여자아이로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누나나 여동생, 딸로 자라고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되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며느리가 되면서 겪는 일들은 전형적이라 할 만큼 뻔하다. 명절이 되면 쏟아지는 ‘시월드’ 뉴스나, ‘독박 육아’, ‘유리 천장’의 실감들, 늘 얼마간 불안하고 억울하며 환멸스러웠던 일들이 일생의 파노라마로 엮어지는 광경은 너무 익숙한 나머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구구절절 내 이야기인데, 그게 너무 흔한 이야기라서 열렬히 공감을 표하기도, 쉽게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나는 마주친 것이다. ‘평범’한 ‘김지영 씨들’이 곧 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연대를 상상하게 하는 동시에 오랜 무력감을 확인하게도 한다. ‘우리’가 겪은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김지영 씨’가 되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었겠으나 적어도 내가 적극적으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또 하나의 ‘김지영 씨’라는 공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여성인 나를 위로하거나 보상하거나 혹은 망각하게 하는 다른 정체성들로 나를 쪼개어 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이면서, 또는 여성이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또는 누군가의 선생으로, 선배로, 혹은 고학력의 연구자로,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 정체성들 속에 함유된 여성의 지분을 눌러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각각의 장이 구축한 질서에 적응하거나 반발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분열을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82년생 김지영>은 그 분열을 과감하게 훑어내고 ‘여성’이라는 시점의 일관성을 만들어낸다. 사회학적 보고서이거나 신문기사의 연결 같은 단출함은 그 시점의 과감함이 선택한 일종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입장’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듣자 하니 또 다른 국회의원이 <82년생 김지영>을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청문회를 보면서 의원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사실’만을 읽고 ‘입장’을 읽지는 않았다고 확신했다. 수백명의 지식인들이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의 ‘적격’을 증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10년을 일한 직장을 육아 때문에 그만둔 후, 계약직을 거듭하면서 자기 일을 계속해 온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의 부인이 겪은 모욕을 규탄하는 소리는 없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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