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커트이유 지음/문학과지성사(2017) 제목은 이유의 소설집 <커트>에 실린 한 단편에서 가져왔다. 소설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직간접적으로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인데, ‘꿈꾸지 않겠습니다’라니, 필경 일종의 역설을 품고 있을 터이다. 나에게는 이 말이 ‘어떻게 꿈꾸어야 할까요’로 들렸다. 똘똘하고 야무져서 한번 마음먹으면 아무도 못 말리는 ‘여진’이 장래 유망한 솔루션 그룹에 입사하는 꿈을 꾼 후 실제로 입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꿈꾸지 않겠습니다’) 여진뿐이 아니었다. 그 무렵 세상에는 꿈에서 본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맹렬히 꿈을 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무언가를 강렬히, 전심전력으로 원해야 했다. 꿈을 이룬 여진은 행복했을까. 취직을 하고,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여진은 이제 분노와 원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자신을 괴롭히는 사수를 욕하고, 야근과 격무를 당연하게 강요하는 과장에 분노하고, 개발자의 영혼을 갈아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를 저주했다. 여진은 회사가 폭삭 무너지는 꿈을 꾸기 위해 야근을 그만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반드시 행복하기나 한 것일까. 망가진 현실 앞에서 그나마 꿈이란 게 있어 다행이라는 위로는 슬프다. 이를테면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 갔다 온 그의 이야기.(‘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공화국 ‘야츠’를 알리기 위한 국제 설계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의 인생의 전성기였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도시는 눈과 얼음밖에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지만, 그는 거기서부터 자신의 인생이 새로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설계한 타워 전망대는 건설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개업한 설계사무소는 영업이 되지 않았다. 불경기였다. 아마도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전동차에서 쓰러진 후 7년간 깨어나지 못했다. 7년간 숨만 쉬고 있는 그의 옆에서 아내는 마침내 완성된 타워 전망대의 뉴스를 본다. 눈과 얼음밖에 없는 도시였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마을의 불빛들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살아 견디기에는 잔혹한 꿈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