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1.17 19:17 수정 : 2016.11.17 19:47

서영인의 책탐책틈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박민규, ‘절’(<더블>, 창비, 2010)

이화여대 경찰진압과정에서 학생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우리 시대의 민중가요로, 새로운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박민규의 ‘절(龍×4)’(<더블>, 창비, 2010)에서 이 노래를 읽은 적이 있다. 대천권왕(大天拳王), 청룡검제(靑龍劍帝), 빙해천수(氷海千手), 운무천마(雲霧天馬). 이들은 무림의 절대고수 사룡(四龍), 소설은 무협의 형식을 취한다. 한때 중원을 호령했던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속물과 양아치의 시대, 그들의 무공이 쓸모가 없다. 권왕의 주먹은 폭력죄 구속의 빌미가 될 뿐이고, 고속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 축지를 쓰던 천마는 대형 교통사고나 당한다. “대의와 명분이 사라진”, “연명(延命)만이 남아 있”는 세계, 그들이 수백년을 살고 ‘다시 만난 세계’다.

우주의 기운을 품은 권왕의 주먹과 조폭들의 사시미칼, 바람을 가르는 천마의 축지와 고속도로의 페라리. 이 대비가 무협의 세계가 들어설 수 없는 속세를 표상한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이 속세에서 들려오는 노래이다. 권왕이 출소한 날 사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시 만난 세계’를 듣는다. 사랑해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맴의 끝 이 세상 속에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박민규는 자주 줄바꿈이나 활자의 크기, 그림을 동원하여 소설 읽기의 효과를 만들곤 한다. 작은 활자로 표기된 소녀시대의 노래는 아련하게 가물거리는 잡음처럼 속세의 착잡함을 환기한다.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지 9년째인 이장록을 통해 이 무협 판타지는 현실로 연쇄된다. 따르는 후배들에게 전설이 되었으나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이장록이 ‘다시 만난 세계’는 사룡이 만난 속세와 다르지 않다.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 이념도 민주도 민중도 “모두가 이미테이션처럼 느껴지는 골짜기”. 그가 ‘다시 만난 세계’였다. 제발 개량 한복 좀 입지 마! 나 쪽팔려 죽겠어. 딸의 면박이 이장록의 엄숙함을 공격하고 있긴 하지만(소녀시대의 것과 같은 폰트로!), 소설에는 부패한 세계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허무와 환멸이 스며 있다. 거기 어디 쯤에 소녀시대는 불편하게 놓여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세계’는 ‘21세기의 아침이슬’이 되었다. 여기에서 가사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형 기획사가 만들어낸 문화상품, 능글맞은 삼촌팬들의 여신, 철없는 열광의 한때에 ‘불과’했던 소녀시대가 강남역과 이화여대와 광화문에서 새로운 미래와 연대의 꿈으로 재기입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연명의 굴욕과 환멸의 변명 대신 공유의 감각과 생활의 정의로 무장한 자유로운 희망, 그들이 ‘다시 만난 세계’는 ‘Into the new world’로 열려 있다.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민규의 예언은 실현된 셈이다. “영웅의 시대는 끝이 났다. 바야흐로, 소녀들의 시대였다.” ‘20대 개새끼론’을 향한 상큼한 복수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서영인의 책탐책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