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쇼코의 미소최은영/문학동네(2016) 참담한 빛
백수린/창비(2016) 베트남전이 미국의 부당한 침략으로 발발했고, 한국의 독재정권은 그 전쟁에 파병을 결정했으며, 거기서 한국군은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과 대립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후 적수 없는 자본주의의 독주가 시작되었다는 것 또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정말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맞는 걸까. 가족이 몰살당한 베트남인들에게 우리는 아직 사과하는 법을 모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지만 세계는 여전히 대립과 격차 속에서 어딘가를 향해 분노와 슬픔을 내뿜는 인간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역사들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진짜 사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씬짜오, 씬짜오’, <쇼코의 미소>) 아무것도 몰랐다는 건, 베트남에서 온 투이의 일가가 한국군에게 몰살당했다는 사실, 혹은 학교가 가르친 대로 한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믿었던 무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서 미안해. 상처를 감추면서 타인에게 따뜻했던 그 마음의 고마움을 충분히 알지 못해 미안해. 최은영의 ‘씬짜오, 씬짜오’가, 백수린의 ‘국경의 밤’이 1995년 어름의 옛 동독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냉전 종식과 유럽연합 출범으로 세계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 시점, 국내적으로 본다면 문민정부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의 명암이 예민하게 두드러졌고 사회적 생존을 위한 경쟁은 본격화되었던 시점. 흥미롭게도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시점에서 베트남의 투이, 일본의 다카히로(‘여름의 정오’, <참담한 빛>) 같은 이국의 상대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베트남전이나 일본의 버블 붕괴 같은 역사적 배경보다 부각되는 것은 각각의 이유로 깊이 상처입은 마음들의 소통과 이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역사나 정의보다 개인적 소통을 중시하는 태도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작가들에게 역사와 개인은 분리되지 않으며, 소통의 가능성과 노력이 국가 공동체 단위로 분할되지도 않는다. 투이만큼 나도 아픈 것이고, 그랬을 때 나와 투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상처로 함께 고통스럽다. 세계의 이방인이 된 듯한 다카히로의 고독은 내내 경쟁에 시달리며 친구를 잃어왔던 스무살 ‘나’의 고독과 다르지 않다. 그 개별적 존재들의 마음으로 직접 다가가되, 각각의 상처가 공통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는 이 감각은 경계 없이 친밀하여 속수무책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함께 아프고 난 후 우리는 거창하게도 ‘세계평화’와 ‘인류애’ 같은 말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 아는 이야기들은, 아직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을 통해 다르게 읽힌다. 설마 이렇게 사소하고 세심하게 세계의 평화를 가늠하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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