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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1 19:17 수정 : 2016.10.21 08:41

서영인의 책탐책틈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창비(2016)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문학동네(2016)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이른바 ‘책맥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 합정동 어디 북카페에 가면 금요일 밤부터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다 하고, 망원시장 근처 맥주가게에서는 박준 시집과 맥주를 세트로 판다는데 이미 완판이란다. 예전에 흥이 넘치는 어머니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카바레에 갔다던데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병나발을 불어야 하는 건가.

그래도 책 따로 술 따로를 고수했으나 자꾸 술을 권하는 책들이 있어 몹시 곤란하다.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가족의 뒷수발을 했던 이모가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사라졌다.(권여선, ‘이모’) 동생의 도박 빚과, 신용불량과, 비정규직으로 10년씩 빚을 갚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었겠지.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종일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삶. 한 달 생활비는 35만원, 택배도 방문자도 전화도 방해하지 않는 삶. 술은 일주일에 소주 한 병, 일요일 저녁에만 마신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뭔가, 가족도 끊고 인터넷도 끊고 택배도 끊었는데 소주는 남았다는 얘긴가.

이런 얘기는 또 어떤가. 강의를 빠지고 동네를 배회하다 평상에서 낮술을 마시는 할머니들을 만난다.(윤성희, ‘낮술’) 눈이 어두워서 책도 못 보고, 드라마는 밤에나 하니 낮에는 술을 마셔야 한단다. 영감은 죽고 자식도 떠났으니 밥을 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술을 마신단다. 늙은 몸도 마성의 드라마도 매일의 끼니도 장악하지 못하는 곳에 막걸리가 있다. 지루해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객쩍은 소리나 하든가, 그러다가 슬그머니 술값도 안 내고 사라져서 민폐나 끼치기는 해도, 흥청망청 절제불능의 인간 취급을 받으면 누구나 서운한 법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니, 음주찬양고무 소설의 등장인가.

<산해경>을 읽는 기분으로 취한 듯 책을 읽었다.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무슨 산이 있고, 거기 있는 부추 같은 풀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370리를 가면 이처럼 생겼는데 갈기가 있는 암수한몸의 짐승이 산다. 그 고기를 먹으면 질투를 않는다니 터무니없는데 왠지 피식 안심이 된다. 할머니들의 막걸리를 얻어 마시다 오니 3시간짜리 강의가 끝났는데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는 매일의 삶은 일요일 저녁 소주 한 병을 매듭으로 다시 새롭다. 동쪽으로 300리 또 동쪽으로 370리 가듯 어처구니없는 삶이라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때로는 진기하고 때로는 당연하며, 어느 날은 누군가의 심장소리나 웃음 한 조각이 눈부시게 또렷하고 선명하다. 이미 마음은 혼곤하고 훈훈하니 더 이상의 알코올은 필요치 않고, 덕분에 당신의 간은 하루치의 휴식과 다음날 음주의 명분을 얻었다. 참으로 몸에 좋은 책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책맥족’의 탄생. 하루는 책, 하루는 술, 매일을 황홀하게 보낼 수 있는 황금비율이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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