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백민석 지음/한겨레출판 펴냄(개정판 2015년) 당대를 대표하는 촉망받던 작가가 갑자기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사라졌다가 10여년 만에 나타났다면, 그리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 아무래도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다시 등장한 그가 어떤 소설을 쓰게 될 것인가이다. 소설가 백민석의 이야기이다. 복귀하면서 <혀끝의 남자>를 내놓았고, 2년간 부지런히 계간지에 단편을 발표했으며, 얼마 전 장편 연재도 마쳤다. 그리고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그가 사라지기 전에 낸 마지막 소설집이다. 프로필에 적힌 대부분의 책들이 절판된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복간된 첫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그간의 공백을 이어놓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짐작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2001년에 출간된 책을 2015년에 다시 읽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도 있겠지만 시대의 한정에 정직한 작품도 있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절필과 복귀의 작가라면 후자 쪽이 더 흥미롭다. 덕분에 15년의 시간이 어떤 연속성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감각을 읽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드넓은 장원과 텍사스촌의 싸구려 유원지라는 공간 대비를 인상적으로 느꼈던 기억이 있다. 건조하게 말하면 계급 격차, 계급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비효과 같은 것. 그리고 다시 읽으며 이전에는 다소 뻔한 것이라고 느꼈던 심부름꾼 소년의 ‘도련님 따라하기’(아마도 대부분의 독자가 소설의 주제라 느꼈을)가 더 눈에 들어온다. 장원이라 불러 마땅할 엄청난 저택의 심부름꾼 소년은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고 주급을 받는다. 그의 일과에는 병약한 주인집 도련님과 놀아주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도련님은 그를 스스럼없이 대해 주지만 도련님과 심부름꾼 소년 사이에는 엄연한 위계가 있다. 심부름꾼 소년은 도련님의 걸음걸이, 말투, 웃음을 흉내내고 급기야 그의 글쓰기를 따라 한다. 성인이 된 후 그는 자신의 일기, 자신이 쓴 책이 도련님의 서재에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발견한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다. 가난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장원을 흉내내면서 심부름꾼 소년은 가난과 부의 위계에 종속된 삶 이외의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모방으로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격차가 적나라해질 때, 선망과 복종은 분노와 파괴로 폭발한다. 최근 연재가 종료된 <공포의 세기>는 그러므로 심부름꾼 소년 그 이후의 세계이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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