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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7 19:45 수정 : 2016.10.21 08:53

서영인의 책탐책틈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는 이른바 아이엠에프(IMF) 세대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2000년대의 기록이다. 2000년 벽두에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투신한 열혈 청년들의 성장기라 정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상큼하게 정리하기 힘든 무엇이 이 소설에는 있다. 일단 150여개의 장으로 분할되어 한 장이 짧으면 2페이지, 길어도 10페이지를 넘지 않는 구성은 의도적으로 연속적 서사를 거부한다. 각 장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대우그룹 해체나 대규모 정리해고, 월드컵과 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라크 파병, 그리고 두 번의 대선이 등장하고 인물들은 그 사건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데도 어쩐지 그 사건들로부터 비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시대적 풍경의 날렵한 스케치에 그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소설은 자기 세대의 체험을 통해 한 시대를 규정하고 싶어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운동의 정파 조직도나 ‘잃어버린 10년’의 연표를 소설의 앞뒤에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 청춘이자 한 시대의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한 인간이자 한 세계의 모형을 창조하고 싶었다.”(작가의 말) 분절된 서사의 이면에 완강하게 자리잡은 자기주장, 나는 일관된 냉소의 태도를 통해 그것을 읽었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어떤 사건의 중심에도 서 있길 거부하는 소설의 형식은 이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 결코 분리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 소설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연한 결론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코 만날 수도 없는 것이다.” 냉소적 태도의 정치적 기원이라고 할 만하다.

‘민주정부’와 ‘신자유주의’의 모순적 동거.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거나, 우선적 과제를 명분으로 뒤로 미루었던 문제가 점점 더 우리의 목을 죄어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정권을 빼앗긴 자들의 넋두리가 아니라 불완전한 민주정부를 용인한 자들의 회한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옳은 것과 필요한 것’이 애초부터 어긋나 있는 곳에서 어떤 차선도 명분이 되지 못한다. 수많은 청춘의 에피소드들은 이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진실을 향해 있다. 그리고 이 진실을 분명한 거점으로 삼는 한 냉소는 필연적인 선택이 된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누군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민주정부 이후 악화된 노동환경과 가속화된 자본주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므로.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체험과 기억마저 같은 것은 아니다. 그 다른 체험과 기억의 절단면을 <디 마이너스>로부터 읽었다. 이 절단면으로부터 한 세대의 자기호명이 시작된다. ‘아이엠에프 세대’니, ‘88만원 세대’니 이 세대를 호명하는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이 이름들은 미디어나 선배들이 붙인 것이었을 뿐, 그들의 말은 아니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선배들의 말로부터 독립한 자기규정에 의해 한 세대의 정체성은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세대론은 자기호명으로 완성된다. 스스로를 호명할 수 없었으므로 늘 조금씩 오해되었던 그들로부터 뒤늦게 도착한 말이 서늘하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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