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구토와 침묵. 신년 벽두에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골라낸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신인작가들이 세계를 보는 태도를 표상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이 불만스럽기도 했고, 너무 쉽게 안정적인 결말을 택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신인다운 패기와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심사위원들은 늘 주문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런 작품들이 신춘문예의 벽을 뚫고 당선된 예는 많지 않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수백 대 일의 경쟁을 거친 비슷비슷한 작품들로 시작하여 수없이 벼려지고 달구어진 꾸준한 글쓰기가 만들어낸 성과일 뿐이다. 신춘문예 매뉴얼이 있다느니, 당선에 적절한 스타일이 있다느니 하는 한탄이 입버릇처럼 반복된 지도 이미 오래다. 현실에 대한 적절한 관심도 있어야 하고, 인상적인 문장도 한둘쯤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승전결의 안정된 구성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익숙한 매뉴얼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을 아쉬워하기에 앞서, 두터운 매뉴얼의 벽을 쌓고 또 쌓으면서 그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나름의 입문을 이룬 그 과정을 소중하게 여길 수는 없을까.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는 스펙과 스펙과 스펙으로 겨우 계약직 인턴사원이 될 수 있을 뿐인 청춘들 사이에서, 문학만이 낭중지추의 재능으로 빛나기를 바라는 것은 혹시 선배들의 과욕이 아닐까. 매뉴얼이거나 스타일이거나, 두터운 익숙함을 뚫고 나오는 말들은 그래도 있다. 그렇게 찾아낸 말이 구토와 침묵이다. 소녀는 재개발지구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 재건축을 기대하는 주민들은 주변의 철거지역과 자신들의 주거지역을 애써 분리한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아파트를 드나드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몰래 버려지는 쓰레기의 주인을 찾지 못해 안달이다. 그리고 비위 약한 소녀는 그 주민들의 말을 들으며 구토를 반복한다. 소수언어를 연구했던 언어학자는 한국의 남쪽도시(아마도 광주)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가 그 도시에서 만난 언어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상처와 소외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소녀는 할머니와 토스트를 나눠 먹으며 구토를 멈췄고, 외국인 언어학자는 그 도시에서 만난 여자를 통해 침묵을 삶으로 받아들였다. 따뜻한 이해와 긍정의 결말이 예비된 관습의 영향 속에 있다면 구토와 침묵은 익숙함의 관습 속에서도 포기되지 않고 남은 감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가들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산뜻하게 벼려져 빛나지 않더라도 나는 이 구토와 침묵의 감각을 믿어 보기로 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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