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3 19:23
수정 : 2016.10.11 09:54
듀나의 영화 불평
올해 전주에서 내가 들은 가장 놀라운 소식은 신작 <최악의 여자>를 들고 영화제를 찾은 김종관 감독이 무심하게 던진 차기작 뉴스였다. 그는 같은 날 카페를 배경으로 한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이라는 영화를 찍을 예정인데, 주연배우들이 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라고 밝혔던 것이다.
놀라움을 접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그렇게까지 신기한 뉴스는 아니다. 그가 찍는 영화는 6회차 촬영이 예정된 부담없는 소품이다. 이미 정유미, 한예리는 그와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작품이 뜸했던 임수정과 정은채에게도 이 프로젝트는 나쁘지 않은 몸풀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씩 계산해보면 이 네 명의 배우들이 같은 영화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건 배우들과 감독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에나 그렇다. 이 네 명의 여자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뉴스는 여전히 신기하다. 비슷한 입지의 네 명의 남자배우들이 같은 영화에 출연한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그 뉴스가 지금처럼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들을 모으는 것은 김종관 신작의 네 배우를 모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만 신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린 영화를 위해 남자들을 모으는 것을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비슷한 비중의 여자들이 모인다는 것은 오로지 트위터 백일몽 속의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모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영화가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좋은 영화가 나와도 지금 사람들이 상상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해어화>다.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캐스팅을 보고 흥분했다. 한효주, 천우희, 장영남, 류혜영. 이 정도 캐스팅이면 온갖 상상이 다 현실화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이 영화가 그 상상대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나는 <해어화>가 나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자배우들과 여성 캐릭터들을 다루는 이 영화의 전형적인 태도에는 실망스러운 구석이 있다.
이번 김종관의 프로젝트에도 흥분을 가라앉히는 요소들이 있다. 그중 가장 맥 빠지는 것은 이 영화가 옴니버스물이라는 것이다.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기껏 모아 놓은 네 배우의 합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니 맥이 좀 풀린다. 결국 사람들이 배우들의 조합을 보고 흥분하는 건 그들이 한자리에서 연기를 섞고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일 테니. 그리고 여자배우들이 다른 여자배우들을 상대로 전형적인 몇몇 틀에서 벗어난 관계 연기를 할 기회는 짜증날 정도로 적지 않던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영화를 놓고 너무 많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 갈증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김종관이 이렇게 손쉽게 여자배우들을 모을 수 있다면 다른 누가 더 야심 찬 프로젝트로 다른 조합을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누군가를 위해 자극을 주어보자.
듀나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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