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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05 20:18 수정 : 2017.04.05 20:29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일대에 핀 벚꽃. 창원/연합뉴스

[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방콕족 끌고 밤벚꽃놀이 나선 선배의 어이없는 기억상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일대에 핀 벚꽃. 창원/연합뉴스
곤란하다. 참으로 곤란하다. 이 곤란함은 내가 만든 것이기에 더욱 곤란하다. <모든 요일의 여행>. 작년에 내가 쓴 책의 제목이다. ‘모든 요일’이라니요. 월화수목금토일 여행을 한다는 뜻인가요?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요? 한국에서? 이 사회에서? 합당한 의심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평소에도 여행 자주 다니시죠?”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지난 주말에는 서울성곽을 따라 걸었는데, 매화가 벌써 다 피었더라고요. 얼마나 향이 좋은지 내내 킁킁거리며 한참을 걸어 다녔어요.”

하지만 명백히 이 대답은 거짓이다. 나는 절대 주말엔 집 밖에 나가지 않으니까. 집 앞 슈퍼에도 나가지 않으니까.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세상 제일 억울한 사람이 되니까. ‘주말에 집 밖에 나가야 하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주 5일이나 집 밖에 나갔는데, 주말에도 나가야 하다니. 아, 억울하다 억울해. 얼른 일 처리하고 얼른 집에 들어가야지.’

그렇다. 이것이 나의 사고 패턴이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내고 일주일 내내 집 안에만 있었던 적도 있다. 멋있는 카페에 가고 싶은 디엔에이(DNA),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 디엔에이,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디엔에이, 혹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고 싶은 디엔에이도 물론 내게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디엔에이를 이겨버린 단 하나의 디엔에이가 내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집순이’ 디엔에이이다. 덕분에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늘 집 안에서 바라본다. 마치 창문이 거실에 걸린 액자라도 되는 것처럼.

외로운 선배 초대받아 가니
“좋은 날 왔을 때, 길게 늘려야 해”
소매 잡아끌어 나선 밤마실
다음날 필름 끊긴 선배에 황당

하지만 나의 카피라이터 선배는 나와 다르다. 한참 다르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철군(그녀는 늘 나를 이렇게 부른다).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자지 않을래? 내가 요즘 뭐가 불안한 건지, 집에 혼자 있으면 거의 잠을 못 자서 말이야. 누가 있으면 좀 낫더라고.” 나야 뭐,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1초 만에 잠드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녀의 곤란함을 해결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같이 퇴근을 하고, 같이 술을 진탕 마시고, 같이 그녀의 집에 갔다.

손님인 내가 먼저 샤워를 했다. 그리고 선배가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먼저 쏙 들어갔다. 그다음부턴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명색이 후배인데, 명색이 불면증을 치료해주러 그 집에 온 건데, 내가 먼저 잠들어버릴 수는 없었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가, 괜히 물을 마시며 억지로 잠을 내쫓으며 선배의 샤워가 끝나길 기다렸다. 적어도 잘 자란 인사 정도는 건네고 잠들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선배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한발 나서자마자 선배는 내 이름을 불렀다.

“철군.”

“네.”

“살다 보면 말이야.”

“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네.”

“좋은 날이 왔을 때 우리는, 그날을 최대한 길게 늘려야 해.”

“네”

“나가자.”

“네?”

봄밤이었다. 잠옷 위에 재킷을 껴입었다. 둘 다 머리는 젖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 봄이라도 밤에는 바람이 찼다. 그 바람을 가로지르며 선배가 앞장섰다. 그녀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을 지나, 나지막하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벚꽃이 별처럼 내렸다. 아파트만큼이나 오래되었음이 분명한 굵은 벚나무들은 그해에도 아낌없이 벚꽃을 피워내는 중이었다. 가로등불보다 더 빛나는 벚꽃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벚꽃을 아끼지 않고 눈에 담았다. 선배는 휘적휘적 걸어 아파트 단지 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녀를 놓칠까 잰걸음으로 그녀를 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한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좋지? 너무 좋지? 여기 정말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곳이야.”

그러더니 선배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풀밭에서 강아지처럼 뒹굴었다. 너무 천진난만하게 뒹구는 그 모습을 보며 그녀를 보며, 나도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온몸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 좋아도 잠옷을 입고 풀밭을 뒹굴 만큼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선배와 나는 마치 조르바와 주인님 같았다. 그 순간을 아낌없이 온몸으로 살아버리는 조르바를 한없이 동경하면서도 결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주인님 같으니. 그리하여 나는 풀밭을 뒹구는 선배를 바라보다가 벚꽃을 바라보다가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봄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선배가 말한 것처럼, 좋은 날이 왔고, 우리는 기꺼이 그날을 최대치로 늘렸다.

다시 벚꽃 터널을 지나, 오래된 아파트를 지나, 선배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 때문인지, 내가 있어서인지, 선배는 금방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아낌없이 그 순간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동시에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그 두 개의 생각 사이를 오가다가 나는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선배와 같이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말했다.

“어젯밤 벚꽃 산책 진짜 좋았어요.”

“벚꽃 산책? 누가? 우리가?”

이럴 수가. 설마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완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배에게 말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데,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길게 늘려야 한다며. 그래서 나 데리고 나갔잖아요.”

“아, 아. 기억난다. 벚꽃 너무 좋았지?”

“완전 너무 좋았어요. 선배는 좋다면서 한강 내려다보이는 풀밭에서 막 뒹굴었잖아.”

선배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러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뒹굴었다고? 그 풀밭에서?”

“응. 한강 내려다보이는 그 풀밭에서. 나도 같이 뒹굴까 하다가, 나는 관뒀지 뭐.”

“진짜 내가 뒹굴었어? 거기서?”

“응. 기억 안 나요?”

“거기 완전… 온 동네 개들이 다 와서 볼일 보는 풀밭이야…. 내가… 거길… 뒹굴었다고?”

나도 완전 굳은 표정으로 선배를 잠깐 바라봤다. 또 선배의 필름이 끊어졌던 것이다. 이제 내가 뒹굴 차례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뒹굴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고 그랬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봄밤은 아름답다고. 그 봄밤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니 이번 봄엔 제발, 게으른 나여, 집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보자꾸나. 매화와 산수유와 목련과 개나리와 진달래와 그 모든 꽃들이 아우성이니까. 선배의 말대로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늘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봄은 그 의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니까.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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