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몸치’를 탈춤의 세계로 인도한 ‘백정’을 추억하며
하회탈춤. <한겨레> 자료사진
|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닮고싶어 안달할 때
친구들도 각자의 언니를 찾아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나는 나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탈춤이라니. 춤이라니. 어릴 적 개다리춤도 어려워했던 주제에 춤이라니. 중학교 때 무용시간에 제일 지진아였던 주제에 춤이라니. 이 몸뚱어리에 춤이라니. 나는 아침에 학교를 가며 팔 동작을 연습했고, 점심시간엔 건물 뒤로 가서 걸음걸이 연습을 했고, 저녁에 집에 가며 둘을 합쳐보았다. 언제나 실패였다. 실패. 언니는 가장 먼저 나의 춤 감각을 포기했다. 그래, 한 동작 한 동작 외워가며 추면 되지. 하지만 실패. 다음으로 언니는 나의 춤을 포기했다. 그래, 민철아, 걸음걸이부터 해보자. 오른쪽 발이 앞으로 나갈 때 어깨가…. 하지만 또 실패. 어떻게 해도 실패. 결국 나는 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언니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걸음걸이 하나부터 다시, 다시, 또다시 연습시켰다. 다른 친구들은 연습시간에 잘 나오지도 않는데, 난 한 번도 빠질 수 없었다. 언니가 나오지 않아도 나는 점심시간마다 연습에 나갔다. 몸살이 났을 때에도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2년을 탈춤에 매달렸다. 성적은 끝도 모르고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점점 백정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좋았다. 나라는 여고생의 꿈은 명백히 백정이었으니까. 내가 그 언니처럼 멋있는 백정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동안, 친구들은 각자의 언니를 찾아냈다. 5월 체육대회가 분기점이었다. 농구를 잘하는 언니들이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 언니 자리엔 사탕이 쌓였다. 또 한 무리의 친구들은 체육대회 때 에이치오티(H.O.T)와 똑같이 춤을 춘 언니 뒤를 쫓아다녔다. 그 언니처럼 헐렁하게 바지를 내려 입었고, 그 언니처럼 앞머리를 길게, 뒷머리를 짧게 잘랐다. 여고에서 멋진 언니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춤을 잘 춰도, 조금만 농구를 잘해도, 조금만 말을 잘해도 후배들에겐 멋진 언니였다. 사회에 나온 뒤로는 멋진 언니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며, 언니를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언니들은 있었다. 상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한 언니를 보고, 나도 꼭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흥분한 자리에서도 끝까지 부드럽게 설명하는 한 언니의 모습도 마음속 깊이 새겨뒀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고생의 마음을 잃지 않는 언니도, 남자들만 가득한 사회에서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언니의 모습도 간직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모두는 또 한 명의 멋진 언니를 만나고야 말았다. 모든 국민들이 11시를 기다리던 그 아침에 헤어롤을 말고 출근한 그분. 그 2개의 헤어롤을 누군가는 8:0으로, 누군가는 ‘인용’으로 해석하며 초조한 마음을 끝없이 내비칠 때에도 차분하기만 했던 그분. 뒷목을 잡으면서도 끝내 소리 지르지 않던 그분. 그분이 단호한 어조로 “파면한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 모두는 그 장면을 돌려보고 또 돌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렇게 멋진 언니를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고. 이 사회에는 더 많은 멋진 언니가 필요하다고.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