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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2 20:20 수정 : 2017.03.22 20:36

[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몸치’를 탈춤의 세계로 인도한 ‘백정’을 추억하며

하회탈춤. <한겨레> 자료사진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다. 딸이 이제 학교에 입학한다고. 책가방을 같이 사러 가자고.

“아무래도 애가 자기 취향이 뚜렷해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책가방을 금방 고를 거야. 어휴, 새 학기가 되니까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학’이니 ‘책가방’이니 ‘새 학기’니 하는 단어들을 듣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런 단어들로부터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20년 전만 해도 1년에 두 번 ‘새 학기’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고, 3년에 한 번은 ‘입학’이라는 단어를 들어야만 했는데 말이다.

‘시험’이란 단어가 내게서 영영 멀어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낀 해방감과는 다른, 아스라한 기분이 느껴졌다. 새 학기의 낯선 교실 분위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언니까지 생각났다.

고등학교 1학년 새 학기 교실 안.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누가 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는, 그 설레면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교실 안으로 한 언니가 걸어 들어왔다. 성큼성큼. 그러더니 감히 선생님의 교탁 앞에 섰다. 떨리는 표정 하나 없이. 주저하는 목소리 하나 없이.

“안녕하세요. 저는 탈춤 동아리 회장, 2학년 ○○○입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자기 동아리 소개하러 왔었죠?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저희 탈춤 동아리를 소개하려고 해요.”

내가 입학한 여고는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는 걸로 유명한 학교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각종 동아리들도 넘쳐나는 학교였다. 방송반, 만화반, 사진반, 춤 동아리 등등. 쉬는 시간이면 아직 중학생의 어설픔이 가시지 않은 우리들을 앞에 놓고 선배들의 구애가 이어졌다.

“집에 다들 카메라 있죠?”

“우리 방송반은요….”

하지만 나는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공부! 그래, 공부다! 서울로 대학교를 가는 거다! 동아리 따위에 나눠줄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언니들이 들어와도 늘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 언니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친절한 말투였지만 우렁찬 목소리였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탈춤반에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그 언니가 탈춤을 잘 설명했냐고? 아니, 그보다는 나는 그 언니에게 반해버렸다. 요즘 말로 ‘걸크러시’. 물론, 그때는 그런 단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심했다. 공부 대신 탈춤에 온몸을 던지기로.

당장 담임 선생님이 난리가 났다. 반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이 갑자기 공부가 아닌 탈춤을 추겠다고 나섰으니. 각종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고, 결국 엄마가 학교에 불려오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러건 말건, 나는 이미 탈춤반의 문턱을 넘은 후였다.

탈춤반 지망생들을 앞에 앉혀놓고, 2학년 언니들은 공연을 한바탕 했다. 기생이 나오고, 파계승이 나오고, 양반과 선비가 나오고, 이매(바보 역할)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반한 언니는? 소와 함께 나왔다. 그 언니의 역할은 다름 아닌, 백정이었다.

백정. 가짜 소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우랑을 자르고, 관객에게 그걸 팔며 돈을 걷는 역할. 그 언니의 공연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멋있는 역할이니까 전부 다 저 역할에 지원하면 어쩌지? 저것 봐, 저것 봐. 백정은 저렇게 대사도 많고, 완전 탈춤의 중심 역할인데, 나 같은 게 될 리가 없어.’

세상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누가 백정 같은 게 되고 싶기나 하다고. 아무도, 정말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1의 경쟁률을 뚫고, 아주 무난히 백정 역할에 안착했다. 멋있는 그 언니의 직속 후배가 된 것이었다.

고교 탈춤반, 나도 포기한 나를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닮고싶어 안달할 때
친구들도 각자의 언니를 찾아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나는 나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탈춤이라니. 춤이라니. 어릴 적 개다리춤도 어려워했던 주제에 춤이라니. 중학교 때 무용시간에 제일 지진아였던 주제에 춤이라니. 이 몸뚱어리에 춤이라니. 나는 아침에 학교를 가며 팔 동작을 연습했고, 점심시간엔 건물 뒤로 가서 걸음걸이 연습을 했고, 저녁에 집에 가며 둘을 합쳐보았다. 언제나 실패였다.

실패. 언니는 가장 먼저 나의 춤 감각을 포기했다. 그래, 한 동작 한 동작 외워가며 추면 되지. 하지만 실패. 다음으로 언니는 나의 춤을 포기했다. 그래, 민철아, 걸음걸이부터 해보자. 오른쪽 발이 앞으로 나갈 때 어깨가…. 하지만 또 실패. 어떻게 해도 실패. 결국 나는 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언니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걸음걸이 하나부터 다시, 다시, 또다시 연습시켰다. 다른 친구들은 연습시간에 잘 나오지도 않는데, 난 한 번도 빠질 수 없었다. 언니가 나오지 않아도 나는 점심시간마다 연습에 나갔다. 몸살이 났을 때에도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2년을 탈춤에 매달렸다. 성적은 끝도 모르고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점점 백정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좋았다. 나라는 여고생의 꿈은 명백히 백정이었으니까.

내가 그 언니처럼 멋있는 백정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동안, 친구들은 각자의 언니를 찾아냈다. 5월 체육대회가 분기점이었다. 농구를 잘하는 언니들이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 언니 자리엔 사탕이 쌓였다. 또 한 무리의 친구들은 체육대회 때 에이치오티(H.O.T)와 똑같이 춤을 춘 언니 뒤를 쫓아다녔다. 그 언니처럼 헐렁하게 바지를 내려 입었고, 그 언니처럼 앞머리를 길게, 뒷머리를 짧게 잘랐다. 여고에서 멋진 언니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춤을 잘 춰도, 조금만 농구를 잘해도, 조금만 말을 잘해도 후배들에겐 멋진 언니였다.

사회에 나온 뒤로는 멋진 언니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며, 언니를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언니들은 있었다. 상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한 언니를 보고, 나도 꼭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흥분한 자리에서도 끝까지 부드럽게 설명하는 한 언니의 모습도 마음속 깊이 새겨뒀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고생의 마음을 잃지 않는 언니도, 남자들만 가득한 사회에서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언니의 모습도 간직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모두는 또 한 명의 멋진 언니를 만나고야 말았다.

모든 국민들이 11시를 기다리던 그 아침에 헤어롤을 말고 출근한 그분. 그 2개의 헤어롤을 누군가는 8:0으로, 누군가는 ‘인용’으로 해석하며 초조한 마음을 끝없이 내비칠 때에도 차분하기만 했던 그분. 뒷목을 잡으면서도 끝내 소리 지르지 않던 그분. 그분이 단호한 어조로 “파면한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 모두는 그 장면을 돌려보고 또 돌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렇게 멋진 언니를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고. 이 사회에는 더 많은 멋진 언니가 필요하다고.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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