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0.19 19:24 수정 : 2016.10.20 10:25

[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슈퍼 구석탱이 술집’의 깜짝 초대와 갑작스런 폐업 소식이 부른 희비극

그날 밤 갑작스레 초대받아 술을 마셨던 서울 망원동의 ‘슈퍼 구석탱이 술집’ 풍경. 김민철 제공
집 앞 슈퍼가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엔 편의점이 들어선다고 한다. 예상했던 수순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 망원동. 동네를 탐험하는 외부인이 점점 늘어나는 곳이다. 문 닫는 세탁소가 생겼고, 길게 줄을 늘어선 디저트 가게가 생겼다. 평범한 밥집 대신 특이한 카페가 골목 구석구석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집 앞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슈퍼 하나가 문을 닫는 일 정도는 망원동에서 뉴스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예상 가능했다고 해서 어떤 충격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나에겐, 우리 부부에겐. 이건 망원동의 핵심에 진도 6.5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기우뚱. 어어어어어. 콰광.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 거지? 근데 재난 문자는 왜 안 오는 거지?

한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진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전, 폭염이 몇 달 동안 우리 일상을 녹여버렸던 때의 일이다. 집에서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퇴근길 남편을 만나 치맥을 먹었다. 언제나 맥주는 모자라니까, 늘 가는 슈퍼에 들렀다. 맥주 몇 병 더 사서 집에 들어가려고.

맥주를 계산하다 말고, 슈퍼 아저씨는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닭발 좋아해요?” 한 번도 닭발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좋아한다 싫어한다 어느 쪽의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한마디 더했다. “내가 아까 닭발을 볶았는데 맛있게 잘됐어. 소주랑 같이 마셔요.” 이래도 되나 망설이며 난감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는데, 아저씨는 벌써 야채 냉장고 앞에 작은 의자를 깔고 있었다.

엉거주춤, 목욕탕 의자보다 낮은 그 의자에, 원래는 컴퓨터 책상이었음이 분명한 테이블 앞에, 당면 진열대 옆에, 그러니까 슈퍼 구석에 앉았다. 왼손에는 커다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처음 본 동네 아주머니까지 다 함께 모여서. 아저씨는 소주를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꽐꽐 부었다. 그 컵에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소주를 부을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리 소주를 들이부어도 그 컵은 넘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갑자기 멋모르는 30대에서 세상 이치에 다 통달한 50대로 건너뛴 느낌이었다. 닭발을 질겅질겅, 소주를 꼴깍꼴깍.

야채 냉장고 바로 옆에 앉은 나에겐 중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오이를 꺼내 아저씨에게 전달하는 일. 아저씨가 “거기서 오이 좀 꺼내 줘봐”라고 말하면 나는 가격표가 버젓이 붙어 있는 오이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다. 아저씨는 테이블 옆의 작은 개수대에서 능숙하게 오이를 씻고, 착착 썰어서 우리 앞에 놔주었다. 늦은 밤, 손님은 드물었고, 오이는 금세 바닥났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오이를 또 꺼내라고 했다. 쏴쏴 능숙하게 씻고, 착착 능숙하게 썰었다.

닭발 볶아 소주를 권하던
7년 단골 슈퍼 아저씨가 떠났다
무너진 ‘망원동 자부심' 앞에
낯선 자동차 한대가 다가왔다

나는 엉거주춤 받은 이 초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뭔가, 동네 유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이 슈퍼 구석탱이 술집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증언까지 더해지자, 나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 자부심에 취기가 더해지고, 더위까지 더해져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슈퍼 아저씨는 또 무심하게 말했다. “더우면 그 옆에 냉장고 문 열어.” 아저씨, 장사는 어쩌시려고요. 이 삼복더위에 야채가 시들면 어쩌려고요.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동네 아주머니가 내 대신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열어라 그럴 때 열어야 해. 저 짠돌이가 언제 맘 바뀔지 모른다니까.”

그 밤, 술은 잘 들어갔다. 우리는 7년 동안 드나들었던 그 슈퍼 아저씨의 과거를 처음 들었고, 그날 아침의 일들을 들었고, 유독 싸가지 없는 한 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욕했고, 아저씨는 더 크게 욕했다. 나는 더울 때마다 손을 뻗어 냉장고 속에 넣었다. 금방 서늘해진 손으로 금방 미지근해진 소주를 마셨다. 슈퍼에 술은 많았다. 당연하게도. 술이 들어가는 만큼 그 슈퍼에 대한 사랑이, 이 동네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저씨가 슈퍼를 정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었다. 망원동에 대한 나의 자부심, 그 핵심이 사라진다니. 지진 같은 소식이었다.

월요일마다 오는 다코야키 트럭에서 다코야키를 포장해 마지막으로 슈퍼에 들렀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맥주를 배달해주시고, 가져온 맥주 상자들을 베란다에 쌓아주신 뒤 창밖을 내다보셨다. 멀리 식당을 열 생각인데 꼭 놀러 오라고 말씀하시고 우리 집을 떠나셨다. 망원동이 순식간에 텅 빈 느낌이었다.

이제 우리 집엔 누가 맥주를 배달해주는 걸까. 이제 누가 나에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거라며 공짜로 우유를 챙겨주는 걸까. 이제 누가 김장김치 맛 좀 보라며 슬쩍 디밀어주는 걸까. 이제 누가 비싼 설탕을 사려는 나를 말려주는 걸까. 마음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우울을 과장했다. 나는 순식간에 비관론자가 되어버렸다.

망원동 비관론자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우울한 기운을 잔뜩 내뿜으며 터덜터덜 출근을 하던 아침이었다.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트렁크 틈 사이로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심지어 거미줄까지 생생한 나뭇가지였다. 처음엔 칠칠치 못한 운전자라 생각했다. 그다음엔 무시무시한 상상이 이어졌다. 거미줄이 쳐질 정도로 운행을 안 한 자동차라면 무슨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저 트렁크 안에? 혹시 저 차 안에? 비관론자답게 별의별 비극을 다 상상하며 걸어가는데, 그 차가 섰다. 그러더니 운전하던 아주머니께서 창문을 내리고 나를 불렀다.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없고, 대답을 하자니 뭔가 찜찜하고, 어째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 아주머니가 나를 다시 불렀다.

“차 타요.”

“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이죠?”

“……네.”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게요.”

“네?”

“어차피 가는 길이에요. 얼른 타요.”

아, 어쩐다. 공포영화에서는 꼭 이럴 때 뭔 사달이 나던데. 나는 슈퍼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았던 것처럼 다시 엉거주춤 차 뒤에 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등도 붙이지 못한 채로 앉아 있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한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우리 딸이 이 길을 그렇게나 지루해하더라고. 차로 가면 이렇게 금방인데.”

아주머니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지하철역 앞에 배달해놓고 사라지셨다. 마치, 비가 억수같이 오던 어느 날 슈퍼 아저씨가 나를 집 앞에 배달해놓고 돌아가셨던 것처럼. 그리고 정말로 고맙게도 아주머니는 내 마음속의 비관론자까지 납치해 떠나셨다. 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자, 다시, 우리 동네, 좀 좋아해볼까?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민철의 가로늦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