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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5 19:19 수정 : 2016.10.06 16:42

[매거진 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대화 불가능 사상’으로 인류를 구원하리라던 이가 카피라이터가 되기까지

말이 안 통한다는 걸 말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비주얼 헌트
“생각해봐.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와 나는 쓰는 언어도 달라. 너는 ‘엄마’라고 말을 할 때 너의 엄마를 생각하잖아. 근데 내가 ‘엄마’라고 말을 할 때 나는 나의 엄마를 생각하거든. 너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완전히 다르지? 그러니까 우리가 ‘엄마’라고 말을 할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니까.”

누가 저따위 이야기를 하고 다니냐고? 부끄럽지만, 내가 저따위 말을 하고 다녔다. 굳이 변명을 늘어놓자면 지금의 내가 아니라 20대 초반의 어린 내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나 같은 생각을 또 한 사람이 있나 싶어 철학 수업을 열심히 들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마를 탁 쳤다. 데카르트니 칸트니 그 유명한 철학자들이 이런 중요한 사실을 놓치다니! ‘주류 철학이 아니라 변방 철학에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이 스며들긴 했지만, 내게 그런 것까지 찾아볼 능력은 없었다. 무턱대고 내가 이 철학의 창시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논문이라도 한 편 써야 하나? 그런데 논문 같은 걸 내가? 써본 적도 없고 쓸 능력도 없었다. 급한 대로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늘 똑똑했으니까.

친구는 듣자마자 말했다.

“난 그게 일종의 착취라 생각해.”

“착취?”

“내가 ‘엄마’라는 단어에 70%의 의미를 담아서 말하는데, 너는 ‘엄마’를 30% 정도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잖아. 그 순간 너는 나의 단어를 착취하는 셈인 거지.”

친구는 한술 더 떴다.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내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것과 동시에 ‘착취’라는 말까지 더해줬다. 착취라니. 대학생이라면 그 정도 단어는 써줘야지. 괜스레 양팔로 안고 있던 책을 더 꼭 껴안았다. 나는 지금 대학생처럼 책을 안고 다니는 것뿐만이 아니라 대화도 대학생처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나, 고등학교 시절의 찌질했던 나여! 내가 그만 멋있는 대학생이 되어버렸다고! 나의 뿌듯함은 하늘을 찔렀다. 이런 게 대학 생활이지. 이런 게 대학생들의 대화인 거지. 안 그래?

뒤늦게 찾아온 중2병일까
‘말은 안 통해’ 개똥철학을
친구에게 말로 설득하면서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던 나

역시. 그 친구와는 대화가 통했다. 잠깐만. 대화가 통한다고? 대화가 안 통한다며? 지금까지 그 말을 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개똥철학을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 대학교 2학년에 나는 ‘중2병’을 앓았던 걸까.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중2병 환자처럼 나는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증거를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 채 도착하지 않은 어느 밤이었다. 자취방 앞 골목을 돌아나서는데, 한 부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자가 점퍼의 깃을 여미며 남자에게 말했다.

“어휴, 왜 이렇게 춥지”.

남자는 여자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답했다.

“응, 봄바람.”

세상에 무슨 이런 대화가 다 있나. 여자의 말과 남자의 말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왜 이렇게 춥냐고 묻는데 “봄바람”이 무슨 답인가. 꽃샘추위 혹은 삼한사온이라도 말하라고, 이 아저씨야. 교과서에 다 나왔잖아. 차라리 대답을 하지 말든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 부부를 쳐다봤다. 여자도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를 째려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대답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만 더 재촉하고 있었다.

아, 이 한심한 세상이여. 아직도 대화가 된다고 믿는 불쌍한 중생들이여. 내가 조만간 나의 위대한 사상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리라.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연인들을 구원하리라. 우리 사이에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이 세상 대부분의 싸움은 일어나지도 않을 텐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혹은 “내 말이 그 말이 아니잖아” 등의 말로 시작하고, 그 말들을 반복하면서 끝없이 고조되는 수많은 싸움들. 나의 사상만 배운다면 그 모든 싸움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텐데. 쯧쯧.

하지만 나의 위대한 사상으로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려던 계획은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평화보다 더 중요한 일이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취직 문제였다.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로 ‘나’에 대해 끝없이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어떤 회사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50군데가 넘는 회사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딱 한 회사만 빼고. 그 회사는 광고회사였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나는 카피라이터가 되고야 말았다.

카피라이터. 광고에 나오는 카피를 쓰는, 그러니까 말로써 낯선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사람. 낯선 이들을 향해 끝없이 대화하자고 말하는, 나의 말이 온전히 누군가에게 가닿길 바라는 그런 사람.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도무지 먹고 살아갈 수 없는 일, 나는 나의 개똥철학과 가장 먼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내 개똥철학의 모순을 스스로 증명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깨달았다. 대화 불가능을 주장하던 나는, 끝없이 대화를 통해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설득하고 있었다. 진심 어린 대화를 위해 수없는 말들을 오래도록 걸러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대화는 불가능해”라며 시니컬하게 말하면서도 막상 누군가와 대화가 되지 않을 때엔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내 말이 상대에게 가닿지 않아 울면서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던 일도 유난히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대화가 가능하길 빌고 있었던 것이다. 간절하게. 오래도록.

지금은 어떠냐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나는, 세상에서 나와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수십 번 카피를 고쳐 쓰며 가장 잘 전달되는 말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말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종종 한다. 그리고 오늘, 내 말을 들어달라며 당신에게 이 글로 대화를 청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변한 거 아니냐고?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살다 보면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 아무도 모르지.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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