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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7 18:13 수정 : 2017.02.27 21:07

영화 <더 킹>. 뉴 제공

권여선의 인간발견

영화 ‘더 킹’ 조인성의 표정이 드러내는 것

영화 <더 킹>. 뉴 제공
<더 킹>에서 박태수(조인성)가 보여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 이 글은 그것에서 출발해 그것으로 끝난다. 그것을 ‘혹시’와 ‘역시’ 사이의 표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전의 영광과 행복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이 한쪽에 있다면, 더 큰 실패와 불행에 대한 끔찍한 예감이 다른 쪽에 있다. 혹시 데리고 갈까, 역시 버리고 가겠지. 양극단을 오가며 과연 어느 쪽인지를 묻는 무력한 기다림의 표정. 그러나 상대는 결코 호락호락 대답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세 남자가 탄 자동차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신나게 떠들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데 그 분위기는 유쾌하기보다 불안하다. 그들의 과장된 몸짓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기다렸다는 듯 사고가 발생한다. 자동차 장면은 나중에 한번 더 반복되고, 그 후에 태수가 차의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를 알게 되면서 또 한번 머릿속에서 충격적으로 복기된다. 그렇게 세번 변주됨으로써 그 장면의 의미는 완성되는데, 그 사이에 태수의 갈데없이 처연한 표정이 끼어 있다.

초반부 서사는 박태수의 껄렁한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엄마가 도망가고 양아치 아빠 밑에서 자란 아들답게 깡패 고등학생이었던 태수는 어느 날 아빠를 사정없이 패는 검사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괴상한 학습법으로 일취월장 성적을 올려 법대에 입학하고 사소한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태수가 검사가 된 뒤 영화의 톤은 진지하게 변한다. 태수는 양심과 권력 사이에서 고뇌하다 결국 검사 권력의 핵심인 한강식(정우성) 라인에 합류한다. 그러자 다시 영화의 톤은 껄렁해져, 태수가 맛보는 권력의 꿀맛이 발리우드식 쇼 장면을 응용한 난장의 형태로 표현된다.

위기가 오고 태수가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영화의 톤은 다시 진지해진다. 잠시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던 태수는 한강식의 똘마니인 양동철(배성우)을 찾아가 자신의 충성심을 알리려다 오히려 쌍욕만 먹고 돌아온 뒤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깨닫는다. 그가 빗속에서 다 끝났다고 울부짖은 직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듯, 기적처럼 한강식과 양동철이 찾아온다. 그들을 보고 태수가 지은 어린애 같은 표정, 울 듯 말 듯,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반가움과 서러움이 교차하던 표정은 잊기 어렵다. 어른의 얼굴에서 유년의 표정이 살짝 고개를 내미는 순간은 언제나 감동적인데, 그건 아마 우리가 그때 가장 약하고 무방비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셋은 의기투합하여 예전처럼 난장으로 놀아보자며 차를 타고 빗길의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태수는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며 두 남자의 추임새에 흥을 맞춘다. 그러다 쾅 사고가 난다. 사고가 난 뒤에도 영화는 긴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이 글은 여기까지다. 내게 <더 킹>은 ‘혹시’와 ‘역시’ 사이에 아픈 쐐기꼴로 박혀 있던 조인성의 표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현실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변덕스럽고 알량한 권력이 쳐놓은 덫에 걸려 이용당하고 모욕당하면서도 태수처럼 갈급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처분만 기다리며 빗속에 서 있는가.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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