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5 18:17
수정 : 2019.11.26 14:15
황민호 ㅣ <옥천신문> 제작실장
최근 조국 사태와 관련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동양대 인턴 프로그램은 서울에 접근하기 어려운 풍기읍의 학생들이 이것이라도 써먹으라고 만든 것인데, 정 교수가 서울에서 내려와 그것을 따 먹었다’고 발언한 내용 가운데 “이것이라도”라는 말이 영 불편했다. 은근한 지역에 대한 하대, 동정과 시혜가 중첩돼 있는 것 같아 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강남과 강북이 다르고 사대문 안과 밖이 다르며 수도권 안과 밖이 다르다는데, 광역시도 아니고 읍·면이란 행정구역을 체감할 수 없는 도시인에게 군 단위는 도대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일까. 혹시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향소부곡’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귀양지, 유배지로 역사 속에서도 오래된 차별이 반복되어 나오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이 여전히 회자된다. 아직도 ‘너 공부 못하면 농사나 짓고 공장이나 다닐래’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세상에서 공부의 목적은 오로지 ‘인 서울’이다.
지역 농촌에 청년, 아이가 없다고 한탄을 하면서도 지역 학교와 부모들은 청소년과 청년을 서울로 도시로 못 보내 안달이다. 수능이 끝나고 펼침막에 ‘인 서울’ 대학에 몇명이나 보냈느냐가 학교의 평가를 넘어 지역도 평가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차별’이라는 권고사항을 백날 이야기해봤자, 동문회 이름으로 학교 정문에 걸린 펼침막이 이를 비웃는다. 이쯤 되면 교육은, 적어도 지역에서만큼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배반하도록 만든다.
서초동과 광화문 광장의 운집이 민주주의로 포장되는 것이 영 불편하다. 진짜 민주주의는 일시적 일회성으로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일상적으로 영속돼야 한다. 4년마다 1초짜리 가림막 투표소 안의 ‘가짜 민주주의’에 속고, 그렇게 선출된 이들이 도대체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걸 보면 안타깝다. 본인들이 뽑은 구의원, 군의원은 이름조차 모르고 이들의 활동을 제대로 알려줄 지역 언론 하나 없으니 사람들의 시선은 늘 뿌리가 없이 과잉정치화돼 있다. 시골 지역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수준 떨어지는 것으로 전락하는 이런 문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지역 농촌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지역 소멸’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박탈’과 같은 뉴스가 나오면 갑자기 지역 농촌이 도마 위에 오를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미디어와 제도권 교육에서 도시 지향적이고 글로벌한 교육을 여전히 가르치는데 지역과 농촌에 대한 정체성과 자존감이 지켜질 리가 없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깊어간다. 징징거리지만은 않겠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을 세워야겠지만, 우리는 ‘대책’을 세워야겠다. <옥천신문>은 지난 7월부터 서울시 청년허브와 함께 ‘별의별 이주기자’ 프로젝트를 5개월 남짓 진행했다. 서울의 청년들이 지역살이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만족도도 높았고 여기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청년허브와 일을 하면서 신문사 부설 ‘풀뿌리 청년학교’를 만들었고 언제든 와서 지역살이를 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이참에 청년학교를 민립 ‘옥천대학’으로 만들까 고심 중이다. 주민들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 사는 청년뿐 아니라 지역의 청소년, 청년들이 지역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배우는 현장 실전형 교육과정을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다. 박제된 탁상 교육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부딪히는 삶터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풀어가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다.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지역 현장 곳곳을 기자와 동행취재하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만으로, 다양한 지역 현장에서 여러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대학보다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공부’는 인서울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쌓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제도권 내 학교와 미디어가 교육과 언론을 독점하는 이 시기에 주민들이 만든 지역신문을 무기로, 새로운 현장형 지역 대학을 만들어보고 싶다. 등록금도 없는 무상교육이다. 곧 시작할 테니 옥천의 변화를 지켜봐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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