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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4 17:57 수정 : 2019.11.05 02:40

명인(命人) ㅣ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관광버스를 타고 들렀던 남도의 한 관광지, 한센병 환자들 외엔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 인권 침해의 대명사, 노벨 평화상도 아깝지 않은 천사 수녀들의 섬, 대학입시용 스펙으로 인기가 높아 연줄을 대서라도 자식을 들여보내고 싶은 봉사 현장,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면 딱 좋을 천혜의 자연. 사람들의 기억에 소록도는 이 중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알려진 대로 소록도는 일제강점기에 한센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강제수용했던 곳이다. 징계검속권을 부여받은 병원장의 감시와 처벌이 합법적이었던 곳. 인종주의적인 낙태와 단종 수술이 시행된 곳. 해방 후에도 이런 관행은 지속되어 소록도는 차별과 배제의 거대한 수용소였던 것이다. 이는 소록도를 ‘인권의 눈’으로 보고자 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시선으로 소록도를 기억하는 사람에게조차 소록도는 주민들이 아니라 한센인들이 살고 있는 섬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바로 내가 그랬다. 한센병이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한센인의 기억 속에 한번 한센인이었던 사람은 영원한 한센인인 것이다.

소록도 주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오래된 건물들이 낡아가면서 소록도 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소록도 안에서는 일부 종교 세력이 소록도를 ‘성지’로 전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흘려듣지 않은 몇 사람의 제안으로 얼마 전 고흥에는 ‘소록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작은 모임이 생겼다.

어떤 장소는 그곳에 살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의 사연이고, 기억이고, 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재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이 모임은 소록도에 대해 좀 더 아는 것이 제일 먼저라 생각했다.

우선 소록도 한센병박물관의 학예사를 모시고 소록도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소록도가 1930년대에 이미 전기가 들어온 지역이었다는 사실, 당시 소록도는 ‘작은 일본’ ‘작은 서울’이라고 불리며 장도 서고 사람들이 계를 들어 찾아오는 관광지이기도 했다는 사실, 물론 이것은 이른바 ‘무독지대’, 다시 말해 한센인들에겐 금지된 구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센인들은 강제노역을 하면서도 스스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그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며 살아왔다는 사실 등은 소록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납작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다음엔 건축가 조성룡 선생님을 모시고 ‘건축과 풍화’란 제목의 공부가 이어졌다. 이날 우리는 또 다른 시선으로 소록도를 생각할 수 있었고, 단지 소록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장소’에 대해, 스러지는 것들에 대해 ‘다른’ 생각을 일깨울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낡고 변하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기억 없이 과거라는 시간성은 없고 장소가 없이는 사람의 기억도 없다고 하신다. 지형, 기후, 풍경 속에 삶의 이야기와 흔적이 담긴 것이 건축물이란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풍화될 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존할 것인가 보전할 것인가, 폐기한다면 어떻게 성찰적으로 폐기할 것인가, 재생을 빙자한 신축이 아니라 진정한 재생을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단지 물리적인 건축물로만 바라보던 것들이 완전히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11월9일로 예정된 다음 모임에는 열세살에 소록도에 들어와서 65년 동안 소록도에서 살고 계신 남재권 선생님을 모시고 산증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주민은 “소록도의 모든 것이 우리 손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록도 주민들은 그동안 고립된 섬에서 생태환경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고유한 방식으로 생활공간을 가꾸며 생존해 왔다. 소록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자원을 제공해주는 생태환경,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의 역사적·생애사적 맥락, 천주교·개신교 등의 종교문화적 맥락, 그리고 한센병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독특한 장소성이 형성되어온 곳이다. 이런 소록도를 두고 개발이니 관광 사업이니 하는 이야기를 쉽사리 내뱉는 것은 대체 얼마나 경박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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