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08 14:50
수정 : 2018.07.08 18:57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망국·항일·계급모순 다룬 묵직한 시대극
1회 시청률 8.9%…tvN 역대 1위
첫화부터 엄청난 ‘볼거리’로 몰입도 높여
430억 제작비 뽑을 간접광고 처리도 관심
뚜껑 연 <미스터 션샤인>을 향한 관심은 대단했다. 지난 7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8.9%(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티브이엔>(tvN) 드라마 첫 방송 기준 역대 1위의 성적이다. 영상미, 연기력 등 시작부터 몰입도가 상당했다는 게 ‘첫방 평가단’의 전반적인 평가다. 신미양요(1871년)에서 시작해 1900년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 션샤인>은 노비 출신 유진 초이(이병헌)가 미국 해병대 장교가 된 뒤 조선에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첫 방송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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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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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은 기자 김은숙 작가는 이름값을 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연이어 쓰며 ‘대사빨’, 서사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인정한 이후 그는 <도깨비>에서 나름 서사를 녹이며 달라지려고 노력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독립운동에, 노비 제도 등 역사의 문제를 녹여냈다. 스타 작가가 자신의 비판을 수용하며 변화하려는 노력은 김은숙이 김은숙인 이유를 보여준다. 43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만큼 영상미도 좋았다. 미군이 쳐들어올 때의 배 장면이나, 어린 유진이 미국으로 넘어갔을 때의 장면들이 이질감이 없었다. 아역부터 주연까지 연기 구멍이 없는 것도 몰입도를 높였다. 이병헌의 아역은 대체 어디서 찾아낸 것일까. 김갑수에게 “조선 팔도 내가 있을 곳이 없다”며 도와달라고 우는 장면은 왜 이리 슬픈지. 하지만 이병헌과 김태리의 만남을 서두르려던 탓일까. 미국과 일본, 조선의 상황에 인물 탄생기 등 너무 많은 이야기를 1회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내용이 산만하고 연결이 끊겼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매끄럽지 않았다. 다행인 건 “세상천지 어느 나라가 지 백성을 버린단 말이오” 같은 대사들이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나라를 빼앗긴 근대사의 뼈아픈 고해성사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정을 농단한 세력에게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라며 솟구쳐오른 울분과 통한다. ‘역사 공부해야지’라는 댓글도 반갑다. 부디 <태양의 후예>, <도깨비>처럼 결국 사랑 이야기로만 치닫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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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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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피디저널> 기자 지금껏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에서 남녀 주인공이 모두 1회에서 만났던 것에 견주면, 두 템포쯤은 느리게 서사를 쌓아가는 모양새다. 첫 화를 채운 것은 유진 초이와 고애신(김태리) 등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 그 만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과거의 사연들이었다. 하지만 약 430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보장하듯, ‘압도적'이라는 수사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만한 영상미가 비장의 무기였다. 장포수(최무성)의 과거사인 신미양요 전투 장면이 대표적이다. 엄청난 ‘볼거리’가 드라마의 더딘 전개를 상쇄했다. ‘자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한국 드라마 산업에 어떤 이정표로 남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앞으로 등장할 구동매(유연석) 캐릭터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애신을 향한 절절한 순애보를 보여줄 ‘서브 남주’를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극우조직 ‘현양사'(겐요샤) 간부로 굳이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역사의 아픔을 납작하게 만들어 가져올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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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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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진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재벌 2세, 혹은 재벌 2세나 다름없는 도깨비와 평범한 여성의 판타지를 그려온 김은숙 작가에게 분명 작가적 야심을 폭발시킨 작품이다. ‘최가 유진’이 ‘유진 초이’로 변신한 과정을 해프닝 같은 우연이 아닌 절실한 ‘탈조선’으로 설명한다. 나라는 백성을 지키지 않지만, 그런 나라라도 지키려 하는 백성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대. 그 와중에 부모를 잃고 제 목숨마저 위태로워진 노비의 자식 유진은 간신히 미국행 배에 올라탄다. 유진뿐만 아니라 나라를 지키려던 부모를 잃은 애신 등 주요 등장인물의 사연은 김은숙 작가가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비극적이다. 강화도 광성진을 배경으로 한 신미양요 사건과 19세기 말의 미국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거대한 규모를 과시하는 동시에 역사에 대한 이 드라마의 태도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무거운 시대의 이야기가 ‘김은숙 작가표 특징’들과 어떻게 만날지가 이 드라마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오글거림과 감동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대사들, 겉으로는 완벽한 캐릭터들이 빈틈을 보이면서 드러나던 유머가 어떻게 스며들 것인가? 무엇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피엔딩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은숙 작가가 항일투쟁의 이야기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솔직히 제일 우려스럽고 궁금한 대목은 4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미스터 션샤인>이 어떤 아이디어로 간접광고(피피엘)를 녹여낼 것인가다. 유진과 애신이 마시고 먹을 ‘가비’(커피)와 ‘초콜렛또’(초콜릿)에 21세기의 브랜드가 새겨져 있을 수도?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의 ‘무리한’ 피피엘을 생각해보면, 그리 ‘무리한’ 상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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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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