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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6 18:26 수정 : 2018.12.06 19:12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대체복무 방안은 국제인권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국제인권기준에 어긋나는 안을 만든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 국민들의 정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정찬
소설가

국제앰네스티는 12월4일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에 관한 공개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서한의 핵심은 국제적 인권 의무와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다양한 복무 분야가 제공돼야 하며, 대체복무 기간이 개인의 양심 또는 신념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수단이 되어서도,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 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처벌로 작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과, 대체복무를 군과 완전히 분리된 민간 행정 관할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서한은 대체복무 방안을 36개월 교도소 근무로 가닥을 잡은 국방부 안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은 복무기간이 현역의 1.5배를 초과할 경우 징벌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방부 안의 36개월은 현역 복무기간의 2배다.

시민사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대체복무 방안은 국제인권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국제인권기준에 어긋나는 안을 만든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 국민들의 정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일제가 징병제를 ‘조선인’까지 확대한 1944년부터 시작된다. 반일감정으로 징병을 거부한 청년들과 달리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은 전쟁과 관계된 일체 행위를 하지 않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병을 거부하여 일제로부터 처벌받았다. 대한민국 정부하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법적 처벌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처벌의 양상이 달라진 것은 1973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각종 병무사범을 완전 근절하라고 지시하면서였다. 병무청은 대통령의 지시에 부응하여 병역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강제 입영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집총을 거부하여 항명죄로 헌병대 영창에 수감되었다. 헌병대에서는 그들을 빨갱이라고 불렀다. 빨갱이가 아니고서는 그토록 모진 체벌을 참아낼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2001년 12월 불교신자와 평화주의자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오태양의 공개 선언은 병역거부의 역사에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까지 병역 혹은 집총 거부로 징역을 산 1만여명의 청년들은 기독교 특정 종파 신자라는 이유로 편견과 무관심에 방치되다시피 했는데, 오태양의 선언 이후 종교와는 무관하게 윤리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의 문제에서 한국 사회 구조와 연관된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간의 기본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까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분단의 산물인 국가주의와 군사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적잖은 국민들이 대체복무제가 병역 기피의 수단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종교적 신념과 양심이 국가안보보다 우위일 수 있는지, 소수자에 대한 관용 때문에 병역의무를 치르는 다수의 존재성은 무시해도 되는지에 강한 의문을 갖는 이유를 분단의 토양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병역의무가 ‘신성한 영역’으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치르는 대가는 가혹하다.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므로 간절한 실존적 동기 없이는 병역거부를 선택할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병역의무를 치르는 다수의 청년들을 양심의 대척점에 세워놓고 이들은 비양심적이냐고 묻는다. 그 물음은 개인에게 존재하는 고유의 가치성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의도하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병역의무를 치르는 다수의 청년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 오류의 지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판이 폭력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질 때 진실과 거리가 멀어진다. 국가안보의 근간은 ‘진실을 아는 국민만이 국가를 사랑할 줄 안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있다. 분단은 군대를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특권집단으로 만들어놓았다. 특권집단의 군사주의와 군사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고, 그 결과 군사주의와 군사문화가 가정과 학교 등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 한국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올바른 대체복무제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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