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20:33
수정 : 2019.07.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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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그네를 탈 줄 아는 조카.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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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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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그네를 탈 줄 아는 조카.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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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스러운 가족중심적 문화를 반영하는 말로 ‘조카 바보’를 종종 떠올렸다. 아무리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지만, 세상에 새로 등장한 작은 사람(조카)에게 이모, 고모, 삼촌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시간과 돈을 들이는 노력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부류가 아니리라 생각했다. 아니, 조카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조카를 사랑했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는 지인들의 경우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 역시 마음의 상처인데, 아무도 이모, 고모, 삼촌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는 않았다. ‘이제 다 큰 거야’라는 말을 나직이 내뱉던 이모, 고모, 삼촌들을 기억한다.
내 조카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다. 솔직히 그가 무럭무럭 자라는 데 기여한 나의 사랑은 고작 0.0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멀리 산다는 이유, 일하느라 바쁠 때가 많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이 작은 지분은 어디에다 ‘내가 조카 바보예요!’라고 말하기에 한참 부족한 지분이다. 가끔 만나고, 가끔 영상통화를 하며 조카의 빠른 성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지난 6월 말 조카를 오랜만에 만났다. 2개월 만의 재회였을까? 그사이 조카가 쓰는 어휘는 부쩍 늘었고, 몸의 움직임은 더욱 정교해졌다. 워낙 뛰노는 걸 좋아해서, 나는 조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주곤 한다. 그날도 1시간 반 정도 놀이터에서 놀았다. 조카도 나도 땀이 범벅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몸의 열을 식히고 앉아있는데, 조카가 슬며시 다가왔다.
“고모! 나는 엄마 딸, 아빠 딸 그리고 고모 딸이야!”
머리가 띵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했다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만, 난 해 준 게 너무 없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조카 바보가 된 순간이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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