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3 19:55
수정 : 2019.04.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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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빨간 모자'.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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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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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빨간 모자'.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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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늑대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가자고 했더니 키즈카페 가야 한다고 조르다가, 롯데백화점에 갈 거라고 하자 “늑대백화점?” 하고 따라나설 정도다. 지난 2월 아이가 전날 어린이집에서 나눠 준 초콜릿 맛 마카롱을 찾던 날이었다. 그 마카롱이 그 마카롱일 줄이야. 전날 냉장고에서 마카롱을 발견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단숨에 씹어 먹은 터였다. 난 머뭇거리다 솔직히 털어놨다.
“어? 그거 어제 아빠가 먹었는데?”
아이가 운다.
“으앙. 안 돼. 얼른 내놔. 마카롱.”
“마카롱은 이미 아빠가 먹어버려서 없잖아. 아빠가 지금 빵집 가서 하나 사다 줄게.”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안 되겠다. 아빠 배를 갈라서 마카롱을 꺼내야겠어.”
아이는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갈라 ‘빨간 모자’와 할머니를 꺼낸 동화 속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나마 아이가 좋아하는 늑대를 아빠와 동일시했으니 다행인 걸까. 올해 다섯 살이 된 아이는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에 빠져 있다. 염소를 잡아먹겠다며 늑대 흉내를 낸다. 아이의 공격성을 염려한 나는 이젠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야, 늑대는 염소를 잡아먹으면 배가 불러서 좋겠지만, 그럼 염소는 어떨 것 같니?”
“염소는 늑대 뱃속이 따뜻하고 깜깜하니까 잘 잘 수 있지 뭐.”
애한테 역지사지 정신 가르치려다 오히려 한 수 배웠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한 둘째 아이마저 늑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 할머니와 목욕한 둘째는 뭐가 불편했는지, 할머니한테 화가 났다. 둘째는 바로 할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 “할미(할머니)는 늑대야.”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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